| [아힘골프]는 골프상식이 풍부한 캐디들을 만들기 위해서 기획되었습니다. 캐디들에게 '아는 만큼 힘이 되는 골프 상식'이 될 수 있도록 잘 알려지지 않은 골프 역사부터 골프 시사 상식까지 조심스럽게 다루어 볼 예정입니다. 연재 중간에 궁금한 사항이 있으시면 언제든지 izer101@naver.com으로 문의 주시기 바랍니다. |
골프의 기원을 찾으려는 노력은 때로는 푸른 필드가 아닌 차가운 바닷속에서 결실을 맺기도 한다.
1664년, 네덜란드를 떠나 인도네시아로 향하던 화물선 ‘케네머랜드(Kennemerland)호’가 스코틀랜드 인근에서 침몰했다.
그로부터 약 300년이 지난 1970년, 바닷속에 잠들어 있던 이 배의 잔해 속에서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물건이 발굴됐다. 바로 인류가 확인한 가장 초기 형태의 골프 클럽이다.
이 발견이 있기 전까지 가장 오래된 클럽의 기록은 1741년 영국 신문에 실린 단 몇 줄의 기사뿐이었다. 하지만 케네머랜드호의 발굴로 우리는 17세기 골퍼들이 어떤 장비를 썼는지 실물을 확인할 수 있게 됐다.
현재 세인트앤드루스 영국골프박물관에 전시된 이 초기 모델들은 우드 2개와 퍼팅 클리크 1개로 구성되어 있다.
재미있는 건 이 ‘퍼팅 클리크’의 생김새다. 나무 샤프트에 아이언 헤드를 박아 넣은 이 기괴한 조합이 현대 퍼터의 머나먼 조상인 셈이다.
사실 우리가 아는 현대적 퍼터의 기틀을 잡은 인물은 18세기 후반 스코틀랜드 리스에 살던 클럽 제작자 시몬 코사(Simon Cossar of Leith)[33]다. 그는 당시 ‘신사 골퍼 모임(Company of Gentlemen Golfers)’을 위해 클럽을 만들던 당대 최고의 장인이었다
하지만 장비의 진화는 소재의 변화와 맞물려 더 드라마틱하게 전개된다. 전설적인 챔피언 골퍼 앨런 로버슨(Allan Robertson)은 골프사의 판도를 바꾼 통찰을 제시했다. 당시 골퍼들에게 아이언은 ‘계륵’ 같은 존재였다. 쇠뭉치로 귀하디 귀한 페더리 볼(깃털 공)을 때렸다간 공이 터져 게임을 망치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그러다 1848년, 단단한 ‘구타페르차’ 볼이 등장하면서 골프는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앨런 로버슨은 이 단단한 공을 보며 확신했다.
“이제는 공이 터질 걱정 없이 아이언으로 핀을 직접 공략할 수 있겠구나!”
그는 안정된 퍼팅과 정교한 어프로치를 위해 클리크를 개량했고, 이는 곧 아이언 전성시대의 서막이 됐다.
이후 ‘영 톰 모리스’가 짧은 거리에서 공을 높이 띄워 세울 수 있는 ‘니블릭(현재의 9번 아이언)’에 ‘컵 페이스(Cup Face)[34]’ 기술의 시초가 되는 설계를 접목하면서, 골프는 비로소 ‘굴리는 게임’에서 ‘띄워서 세우는 게임’으로 진화하기 시작했다.
| 현대 명칭 | 과거 명칭 | 특징 |
| 1번 우드 | 드라이버(Driver) | 현재까지 유일하게 살아남은 옛 이름 |
| 2번 우드 | 브래시(Brassie) | 바닥면을 보호하기 위해 황동(Brass)판을 덧 댐 |
| 3번 우드 | 스푼(Spoon) | 페이스가 숟가락처럼 오목하게 패여 있었음 |
| 5번 우드 | 클리크(Cleek) | 주로 긴 거리의 어프로치용으로 사용 |
| 9번 아이언 | 니블릭(Niblick) | 현재의 웨지처럼 높은 탄도를 내는 클럽 |
| 샌드 웨지 | 샌드 아이언 | 1930년대 진 사라젠이 비행기 날개에서 힌트를 얻어 발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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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Simon Cossar of Leith, who was a club maker for the Company of Gentlemen Golfers. [34] 컵 페이스(Cup Face): 클럽 페이스가 크라운과 소울, 가장자리 앞쪽 일부까지 감싸는 제품으로 이렇게 만들면 이음매가 페이스에서 더 뒤로 밀려나기 때문에 페이스 주변을 더 얇게 처리할 수 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