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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디 관련 법원 판결

택배기사, '유령 근로자'에서 '노동의 주체'로: 판례의 대전환과 우리에게 주는 교훈

 

[포씨유신문=조우성 변호사] 1. '위장된 자영업자'의 굴레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택배기사는 우리 사회에서 '유령'과 같은 존재였다. 매일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특정 회사의 로고가 박힌 유니폼을 입고, 회사의 배송 앱을 통해 지시를 받으며, 회사가 배정한 구역에서 노무를 제공했지만, 법적으로 그들은 '사장님'이라 불리는 개인사업자였다.

 

이른바 '특수고용형태종사자'라는 모호한 명칭 뒤에서 택배기사들은 근로기준법의 보호로부터 철저히 소외되었다. 형식적인 위탁계약서 한 장은 사용자의 모든 책임을 면제해 주는 마법의 방패였다. 그 결과, 배송 전 서너 시간을 꼬박 잡아먹는 '분류 작업'은 임금 한 푼 없는 공짜 노동이 되었고, 주 60~80시간을 넘나드는 살인적인 노동은 당연시되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2020년 한 해에만 15명의 택배 노동자가 과로로 쓰러져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던 비극은, 법과 현실의 괴리가 낳은 참혹한 결과물이었다.


2. 판례의 대전환: '형식'을 뚫고 '실질'을 보다

 

이들의 법적 지위를 바꾼 결정적 계기는 법원의 전향적인 판결이었다.

 

법원은 근로자성을 판단할 때 계약의 형식보다 근로제공 관계의 실질, 즉 사업 또는 사업장에 임금을 목적으로 종속적인 관계에서 사용자에게 근로를 제공하였는지를 기준으로 삼아 왔다. 이때 종속적 관계의 존부는 업무 내용을 사용자가 정하는지, 업무수행 과정에서 상당한 지휘·감독이 있는지, 근무시간과 장소를 사용자가 지정하는지 등 여러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한다.

 

다만 여기서 중요한 구분이 있다.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성과 노동조합법상 근로자성은 그 판단 기준과 범위가 다르다.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성의 경우, 택배기사에 대해서는 이를 부정한 판례가 적지 않다. 반면 노동조합법상 근로자의 범위는 더 넓게 인정되어 왔다. 법원은 "계약의 형식이 위탁계약이라 하더라도, 실질적으로 특정 사업자의 사업에 편입되어 노무를 제공하고 그로부터 소득을 얻는다면 노동조합법상 근로자로 보아야 한다"는 법리를 발전시켜 왔다.

 

특히 CJ대한통운 사건을 통해 법원은 원청(CJ대한통운)이 집배점 택배기사들에 대한 관계에서 노동조합법상 사용자에 해당한다고 보아 단체교섭 의무를 인정하였다. 이는 직접적인 고용관계가 없더라도 우월적 지위에서 근로조건에 실질적인 지배력과 영향력을 행사한다면 교섭당사자로서의 사용자성을 인정하는 '실질적 지배력설'에 근거한 것으로, 택배기사들이 더 이상 고립된 개인이 아니라 자본과 대등하게 협상할 수 있는 '노동의 주체'임을 공식화한 역사적 진보였다.

 

3. 사회적 합의가 가져온 상전벽해(桑田碧海)의 변화

 

법원의 판결과 국민적 공분은 2021년 '택배 노동자 과로사 방지를 위한 사회적 합의'로 이어졌다. 이 합의는 택배기사의 처우를 근본적으로 뒤바꿔 놓았다.

 

가장 큰 변화는 '분류 작업의 분리'였다.

 

배송 기사의 몫이었던 분류 업무를 원칙적으로 택배기사의 업무에서 제외하고 별도 인력을 투입하거나 비용을 부담하게 함으로써, 노동 강도를 획기적으로 낮추기로 합의하였다. 다만 구체적인 이행 방법과 수수료 산정 등에 대해서는 추후 협의하기로 한 1차적 합의였던 만큼, 이후에도 세부 이행을 둘러싼 분쟁이 완전히 해소되지는 않았다. 또한 주당 노동시간 상한을 설정하고, 특수형태근로종사자로서 이미 적용되던 산재보험을 강화하는 한편 고용보험을 확대 적용하는 등 사회안전망을 확충하였다.

 

과거에는 산재를 당해도 제 돈으로 치료해야 했던 기사들이 이제는 사회안전망의 보호를 받게 된 것이다. 실제로 합의 이후 과로사 발생 건수가 눈에 띄게 감소한 것은 법적 지위의 변화가 인간의 생명을 어떻게 구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4. '근로자 추정제'로 가는 이정표

 

택배기사의 사례는 현재 논의 중인 '근로자 추정제'의 당위성을 뒷받침하는 가장 강력한 증거다. 택배기사들이 노동의 주체로 인정받기까지 겪어야 했던 오랜 투쟁과 수많은 희생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이제는 국가가 먼저 '노무를 제공하는 자는 일단 근로자로 추정'하고 시작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물론 여전히 과제는 남아 있다.

 

새벽 배송의 확산으로 인한 야간 노동 문제, 대리점을 통한 편법 운영 등은 해결해야 할 숙제다. 그러나 택배기사의 사례는 명확한 교훈을 남겼다. 노동의 실질이 존재하는 곳에 법의 보호가 미치지 못할 때 사회는 값비싼 대가를 치른다는 사실이다. 택배기사가 쟁취한 권리는 이제 배달 라이더, 골프장 캐디 등 우리 사회의 또 다른 '유령 노동자'들을 위한 희망의 이정표가 되고 있다.

프로필 사진
조우성 변호사

<한 개의 기쁨이 천 개의 슬픔을 이긴다> 저자
로펌 머스트노우(Mustknow) 대표변호사
변호사 업무 외에 협상, 인문학 컬럼 작성과 강의를 하며, 팟 캐스트 '조우성변호사의 인생내공', '고전탑재' 진행 중이다.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졸업 및 법학대학원 수료
사법시험 33회
사법연수원 23기
법무법인(유) 태평양 기업소송부 파트너 변호사
서울중앙지방법원 분쟁조정위원
언론중재위원회 선거기사심의위원
법무법인 한중 파트너 변호사
교육부 정책자문위원
서울지방변호사회 교육위원
서울지방변호사회 중소기업자문 특별위원회 위원
대한변호사협회 사내변호사 특별위원회 위원
법률사무소 기업분쟁연구소(CDRI)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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