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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김대중의 골프히스토리] 현대 골프의 완성자, 해리 바든 ② : 이름을 뺏긴 원조? '바든 그립'에 숨겨진 기막힌 사연

세상에 완벽한 창조는 없다. 골프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기술을 꼽으라면 단연 '바든 그립'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그립의 진짜 주인공은 해리 바든이 아닐지도 모른다. 오늘날 전 세계 골퍼의 90% 이상이 사용하는 이 그립 뒤에는, 원조를 밀어내고 '표준'이 된 한 천재의 압도적인 커리어와 재미있는 뒷이야기가 숨어 있다.

 

 

스승 없는 천재, 관찰로 길을 찾다

 

지난 편에서 언급했듯 해리 바든은 정식 레슨을 받은 적이 없다. 저지 섬의 거친 바다 안개 속에서 그는 오직 스스로를 스승 삼아 골프를 익혔다. 1890년대 초, 그가 처음 프로의 세계에 발을 들였을 때 사람들은 그의 스윙을 보고 경악했다. 당시 세인트앤드루스의 정석은 '있는 힘껏 휘둘러 공을 때리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바든은 달랐다.

 

그는 마치 채찍을 휘두르듯 부드러운 스윙을 구사했다. 당시 골퍼들이 사용하던 히코리(Hickory) 샤프트는 휘어짐이 심해 제어가 어려웠는데, 바든은 무리하게 힘을 주지 않고 샤프트의 탄성을 이용하는 법을 깨달은 것이다. 이 '부드러운 스윙'의 핵심이 바로 그 유명한 오버래핑 그립(Overlapping Grip)이었다.

 

"내 이름은 어디로?" 레이들레이의 비운

 

여기서 우리는 역사적 진실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 바든이 이 그립을 널리 알린 것은 맞지만, 진짜 창시자는 스코틀랜드의 아마추어 골퍼 조니 레이들레이(Johnny Laidlay)였다. 레이들레이는 바든보다 먼저 오른손 새끼손가락을 왼손 검지 위에 얹는 방식으로 공을 쳤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바든은 초기에 양손을 따로 쥐는 '베이스볼 그립(Ten-finger Grip)'을 사용하다가 손의 일체감이 떨어지는 문제를 고민했다고 한다. 그러다 레이들레이의 그립을 보고 "아하!" 하는 깨달음을 얻어 이를 자신만의 스타일로 변형시킨 것이다.

 

만약 레이들레이가 디 오픈에서 바든만큼 우승했다면, 우리는 지금 '레이들레이 트로피'를 위해 경쟁하고 '레이들레이 그립'을 배우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바든이 이 그립을 장착하고 디 오픈 6승, US 오픈 우승이라는 전설적인 기록을 써 내려가자, 대중은 자연스럽게 이 기술을 '바든 그립'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원조보다 더 유명해진 사용자가 이름을 가져가 버린, 골프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브랜드 하이재킹' 사건인 셈이다.

 

테드 레이, "그립이 뭐가 중요해? 일단 멀리 보내야지!"

 

재미있는 점은 바든의 동향 친구이자 라이벌인 테드 레이(Ted Ray)의 반응이다. 바든이 정교한 그립과 우아한 스윙에 집착할 때, 레이는 전혀 다른 길을 걸었다. 레이는 바든과 달리 손가락을 깍지 끼는 인터록킹 그립(Interlocking Grip)을 선호했다. (훗날 잭 니클라우스와 타이거 우즈가 사용하는 바로 그 그립이다.)

 

레이는 바든이 그립의 정교함을 설명할 때 옆에서 파이프 담배를 뻑뻑 피우며 이렇게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립이 뭐가 중요해? 공은 일단 숲을 지나 저 멀리 떨어져야 골프지!" 실제로 레이는 엉성해 보이는 폼으로도 바든보다 30~40야드씩 공을 더 멀리 보냈고, 이 둘의 대비되는 스타일은 갤러리들에게 최고의 볼거리였다.

 

기술 혁신: 구타페르차 볼과의 조화

 

바든 그립이 혁신적이었던 또 다른 이유는 당시 사용되던 구타페르차(Gutta-percha) 볼과의 궁합 때문이다. 이 공은 매우 딱딱해서 조금만 잘못 맞아도 손에 전달되는 충격이 엄청났다. 바든의 오버래핑 그립은 양손의 일체감을 높여 임팩트 시 발생하는 충격을 분산시키고, 클럽 페이스를 더 정교하게 조절할 수 있게 해주었다.

 

결국 바든은 남의 기술을 가져온 것에 그치지 않고, 그것을 시대적 환경(장비와 공)에 맞게 최적화하여 '과학'으로 승화시킨 것이다. 그는 자신의 저서 <The Complete Golfer>에서 "그립은 스윙의 시작이자 끝"이라며 이 기술을 전파했고, 이는 현대 골프 교습학의 출발점이 되었다.

 

 

역사가 기억하는 이름

 

조니 레이들레이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해리 바든은 그립 하나로 골프의 표준을 바꿨다. 그가 레이들레이의 기술을 빌려왔든 아니든, 중요한 것은 그 그립을 통해 골프가 '거친 힘의 대결'에서 '정교한 제어의 미학'으로 진화했다는 사실이다.

 

오늘날 우리는 연습장에서 무의식적으로 새끼손가락을 왼손 위에 얹는다. 그때마다 한 번쯤은 생각해보자. 이 우아한 그립 덕분에 우리의 손가락이 덜 아프게 되었고, 이름조차 남기지 못한 원조 천재 레이들레이의 원통함(?)이 이 스포츠를 얼마나 풍성하게 만들었는지를 말이다.

 

다음 회차에서는 바든의 이 정교한 기술이 실전에서 어떻게 빛을 발했는지, 그의 화려한 디 오픈 6승의 대장정을 따라가 본다.

 

- 3부에서 계속됩니다 -

프로필 사진
김대중 기자

포씨유신문 발행인
글로벌캐디원격평생교육원 원장
전, (주)골프앤 대표이사
건국대학교 국제무역학과 박사과정 수료
일본 국립 쓰쿠바대학 경영정책과 석사과정 특별연구생
미국 UC Berkeley Extension 수료
저서: 캐디학개론, 캐디가 알아야 할 모든 것, 골프 이 정도는 알고 치자, 인터넷 마케팅 길라잡이, 인터넷 창업 길라잡이, 인터넷 무역 길라잡이, 인터넷 무역 실무, 386세대의 인터넷 막판 뒤집기, 386세대여 인터넷으로 몸 값을 올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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