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주석과 참고 문헌만 150쪽이 넘고 본문은 600쪽이 넘는다. 대학교 한 학기 교재처럼 두꺼운 이 벽돌 책이 던지는 질문은 간단하다. “왜 유럽은 인류 역사상 그토록 큰 역할을 했을까?“ 하버드 대학의 인류 진화 생물학과 교수인 저자 조지프 헨릭은 그의 최근 저서인 이 책에서 색다른 접근법을 취하고 있다. 그는 인류학자로서 경력을 쌓아왔지만, 현재는 ‘문화 진화론자’라고 소개한다. 다윈이 그의 진화론에서 생명체가 어떻게 자연 선택을 통해 적응의 경로를 따르는지를 설명하였듯, 문화적 진화도 수많은 경로를 거쳐 이루어졌다고 말한다. 인간의 단일한 문화는 존재하지 않으며, 문화적 진화가 인류 문화를 발전시킴으로써 세대를 초월하는 깊은 이해와 가치를 전달한다고 주장한다. 저자가 말하는 문화적 진화의 중심에는 서구의Western, 교육 수준이 높고Educated, 산업화된Industrialized, 부유하고Rich, 민주적인Democratic 사회에서 자란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대단히 개인주의적이고, 자신의 생각에 사로잡혀 있으며, 통제 지향적이고, 일반적인 관행을 따르지 않으며, 분석적이다. 관계와 사회적 역할보다는 자기 자신, 다시 말해 자신의 특성,
전화가 걸려 왔는데 목록에 저장되지 않은 낯선 번호다. 조금 불안하지만 일단 받아본다. “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사장님, 기가 막히게 좋은 토지를 소개해 드립니다.” 웬 여성이 배우 전도연처럼 코 먹은 소리로 다짜고짜 나를 사장님으로 부르는 전화라면, 일단 주의할 대상이다. “아, 일단 저는 사장님이 아니고요, 아니 그렇게 좋은 토지라면 직접 사시지 왜 저한테 전화를 거셨어요? 그리고 이 전화번호는 또 어떻게 아셨데요?” “..... 딸깍.” 이런 뻔한 내용으로 투자를 권유하는 기획부동산의 스팸 전화는 업계의 유명 인사 김미영 팀장이 은퇴한 이후 서부지검 검찰수사관 다음으로 자주 온다. 투자 소리에 혹할 만도 한데 워낙에 금전 다루는 감각도 젬병인데다 부채도 자산이라며 대출만 잔뜩 받아 둔 나는 빚 부자다. 요즘처럼 금리가 올라 월급에서 더 많은 액수의 이자가 공제될 때면 마치 몸속의 혈액이 빠져 나가는 기분이다. 업자들에게 당하고도 속이 상해 말을 안 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의외로 이런 묻지마 투자에 혹해서 거금을 날린 사람들이 주위에 전혀 없지는 않다. 글쎄, 나 같은 유리 지갑 월급쟁이한테는 해당 없으니 이걸 좋아해야 하는 건가? 『좋은 정
한 사람의 사회생활 출발점을 스무 살이라 치고, 그가 얼추 삼십 년 동안 무엇인가 한 가지에 천착한 결과물(여기서는 책이 되겠다)을 접한다면 어떤 심정일까. 일면식도 없던 사이지만 나이, 대학의 전공, 직업, 그리고 책을 좋아하는 점까지 나와 많이 닮은 듯하니 없던 친근감이 생기는 것 같다면 좀 억지일까. 심지어 그의 책을 통해 SNS상으로 친구가 되었다. 그러나 단순히 닮은 점이 좀 있다는 이유로 동질감을 주장하기에는 좀 뜬금없다. 엄청난 독서와 저술 활동으로 다져진, 내가 미처 몰랐던 그만의 ‘넘사벽’ 내공까지 퉁 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사실 저자와는 정반대로 나는 어렸을 적 내 딸아이에게 머리맡 책 읽기를 해준 적이 다섯 손가락에도 안 꼽히고, 책은 읽었으되 고전 소설보다는 최신 정보의 대중 서적 위주였으며 읽은 책은 십 수년간 책장에 전시용으로 묵혀두었다가 이사할 때가 되어서야 급히 처분했던 적이 있다. 이 책에 등장하는 20권의 소설 가운데 겨우 <분노의 포도> 한 권을 그나마도 학부생일 때 읽어봤을 뿐이라 예시 작품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는 참으로 난망하다. ‘소설은 이야기를 누리는 즐거움과 함께 역사, 사회, 법, 종교, 그리고 한 시
연설을 위해 연단에 올랐으나 원고를 읽으며 연신 고개를 주억거리는 연사를 보면 무슨 생각이 드시는지? 심지어는 아예 원고를 줄줄이 읽어내리며 도리질 치는 연사가 국가 지도자급 최고위 공무원이라면, 거부감부터 생겨 연설 내용에 귀 기울일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누구나 말은 할 줄 알지만 아무나 말을 잘하지는 못한다. 무슨 신통한 방법이 없을까? 법을 전공하고 싶었던 미국의 한 젊은이가 조언을 구하려고 링컨에게 편지를 썼다. 링컨은 ‘만약 스스로 변호사가 되기로 마음먹었다면 그 일은 이미 절반 이상 끝난 셈이다. 성취하고픈 욕구와 결심은 다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점을 항상 명심하라’고 답했다. 예나 지금이나 그의 충고는 어떤 분야이든 통하는 진실이다. 무엇을 하든 행동 방침을 정했다면 이미 반쯤은 성공한 것이다. 시대를 초월한 지혜로운 조언으로 가득한 이 책은 저자 카네기뿐 아니라 당대 영향력 있는 다수 인사들의 성공적인 언행을 사례로 들고 있다. 1926년에 처음 출판된 이 책은 인간의 잠재력을 일깨우고 내면의 성장을 추구하며 단순한 긍정적 사고 이상의 아이디어를 제시한다. 카네기는 때 묻지 않은 사람만이 모든 일에 긍정적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 뒤에
최근 코로나 시대를 거치면서 이제 누구도 더 이상 질병에 대해 말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다행히 이 책은 코로나도, 질병에 관한 것도 아니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미생물에 집중하는 것일까. 뻔한 답변일지 모르지만, 그것은 무엇보다 세상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이다. 만약 미생물이 없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세상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고, 아마 우리 인간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미생물의 가장 큰 업적은 우리가 숨을 쉴 수 있는 산소를 공급해 왔기 때문일 것이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이들을 최근에야 발견하긴 했지만, 이들이 세상에 남긴 흔적은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분야에서 뚜렷이 드러난다. 미생물은 인류보다 더 오래전에 존재해왔고, 우리가 이 행성을 떠난 후에도 오래도록 지속될 것이다. 오랜 세월 지구를 지배해온 영장류로써 큰 자부심을 가진 이들에게는 유감이지만, 지구는 사실 인간이 아닌 미생물의 행성이고 우리는 여기서 그들과 함께 살 수밖에 없다. 조금 심하게 말하자면 아무리 똑똑하고 잘난 체해봐야 인간이야말로 미생물의 집합체에 불과할 뿐이다. 미생물은 음식을 포함한 모든 곳에서 살고 있으며 우리는 항상 미생물을 먹고 마시면 산다. 개인적으로는 맥주의 형태로
낯선 사람에 대한 두려움은 서로를 밀어내게 한다. 만약 우리가 대부분의 서양 사람들처럼 자랐다면, 아마도 낯선 사람들을 경계하도록 길러졌을 것이다. 낯선 어른들로부터 대화는커녕 건네오는 사탕을 받아들지 말라는 부모님의 경고를 귀에 딱지 앉도록 들었을 것이다. 학교에서는 모르는 사람들과의 대화가 위험하다는 비디오를 보게 했을 것이다. 낯선 사람에 대한 우리의 의심은 오랜 역사를 지녔다. 사람들이 정착지에서 살기 위해 모인 이후로, 우리는 외부인들을 배반과 혼돈의 위험한 주체로 보아왔다. 이 두려움은 마을, 도시, 국가의 등장에도 그대로 지속되었다. 소수 민족은 다수 민족보다 적다는 이유로, 이방인은 정착민과는 다른 사람이라는 이유로 박해받아 왔다. 낯선 사람에 대한 이러한 두려움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살아있다. 만약 미국의 조지아주 해리스 카운티로 도로 여행을 간다면, 지역 보안관이 2018년에 세워둔 표지판에 동네 주민들이 무기를 소지하고 있고, 살인죄는 살인으로 다스리며, 감옥 한 채에 356개의 묘지가 있다며 즐거운 여행 되시라는 글귀를 보게 된다. 우리와 다르게 보이는 사람들에 대한 두려움은 오늘날의 문화적, 정치적 소외 풍토에서도 찾을 수 있다. 널리
세대론의 기준대로라면 1960년대 말에 태어난 나는 X세대에 속하는데, 그렇다면 나의 모든 정체성을 X세대라는 한 단어로 대신해도 되는 걸까? 저자에 주장에 따르면 그럴 수도, 아닐 수도 있다. 저자는 우리가 알고 있는 세대 차이 개념이 실제라기보다는 단지 언론이 세대 차이를 문제 삼아 가짜 세대 전쟁을 부채질한 결과라고 말한다. 일례로 기후변화에 대한 신념에는 약간의 세대 차이만 있을 뿐 세대 간 정치적 성향은 더 강력한 예측 변수다. 심지어 자살률의 경우 젊은 세대보다는 50대 중년층 사이에서 더 높다. 사실 세대 차이는 '라이프 사이클 영향'에 기인한다. 예를 들어 일반적으로 젊은 세대는 다른 세대에 의해 '게으름뱅이'이며 '자기 집착'이 강하다는 꼬리표가 붙지만, 젊은 세대가 게을러 보이는 이유는 이들이 아직 재정적으로 독립하지 못했거나 재산을 덜 소유하여 지킬 것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것을 문맥 효과 때문이라고 본다. 게다가 젊은 세대는 경제적으로 불리한 상황에 놓여 있다. 기성세대는 오랜 기간 재산을 모으고 주가가 오르면서 재력이 향상하는 이점을 가지고 있다. 그에 비해 젊은 세대는 기술 발전으로 인한 자동화 추세와 경험이 적다는 이유로
현재까지 생명체가 살 수 있고 실제 번성하고 있는 행성으로 지구가 유일하다는 믿음은 보편적일 것이다. 우리 태양계에서 지구를 제외한 다른 곳에서 생명체를 찾을 수 있는 최적의 장소를 꼽으라면 아마 가장 가까운 화성이 유력할 테지만, 1976년 7월 20일과 9월 3일 쌍둥이 화성 착륙선 바이킹이 생명체의 증거를 찾아 화성 표면에 내려앉았을 때 전송한 사진에는 황량한 사막뿐이었다. 가까운 화성도 이러한데 더 멀리 있는 목성과 토성의 얼어붙은 위성들을 유력한 후보군으로 누가 생각이나 했을까? 그러나 이후 반세기 동안 지구가 아닌 다른 곳에서 생명체를 찾던 과학자들에게 급격한 관점의 변화가 일어났다. 우주의 많은 별 가운데 지구만이 생명체가 살 수 있는 환경을 갖추었다는 생각은 더 이상 지배적일 수 없게 되었다. 지구처럼 강우 주기가 분명하고, 지표수가 풍부하고, 증발 주기가 있는 온화한 세계의 표면에 사는 우리와 비슷한 환경의 세계를 찾기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지구 표면의 71%가 물로 덮인 바다 환경에 살고 있었기에 역사적으로 인간은 자신들의 세계가 늘 바다와 함께한다는 잠재의식을 지녀왔다. 실제로 달의 크고 평평한 평원에는 초기 망원경 관찰에 근거한 상상 속
70일이면 암컷 초파리 한 마리가 지구 전체 인구보다 더 많은 자손을 퍼트릴 수 있다. 과학자들이 ‘켄과 바비’라고 이름 붙인, 생식기 없이 태어난 돌연변이도 있고 어떤 녀석들은 머리가 있어야 할 자리에 다리를 이고 태어난다. 초파리에 관해 미처 알지 못했던 흥미로운 사실들은 이뿐만이 아니다. 연구를 목적으로 이들은 인간에 의해 집단 처형(?)당하기도 하고 맛난 과일로 훈련받은 대가를 보상받기도 한다. 사람과 매우 비슷하게 하루 24시간을 기준으로 일과 휴식 시간을 따로 갖는다. 마약 성분에 중독되어 마이클 잭슨처럼 뒤로 걷거나(Moon Walking) 빙빙 돌다 어지럼증 아니면 배고픔으로 죽는다. 수컷의 정액에는 독성분의 단백질이 있어 암컷의 뇌 속에서 행동을 조종하며 너무 잦은 짝짓기로 일찍 생을 마감하기도 한다. 외부와 단절된 하와이 제도의 초파리는 무려 1,000종이 넘는다. 『초파리가 실험실에 정식으로 데뷔한 때는 1900년이고, 장소는 하버드대학교 교수 윌리엄 캐슬의 실험실이었다. (중략) 박물학의 굴레에서 벗어난 생물학은 동물행동학, 진화론, 생리학 등의 전문 분야로 분화해 가기 시작했다. 생물학자들은 수많은 새로운 개념들을 검증하기 위해 실험용
전화가 걸려 왔는데 목록에 저장되지 않은 낯선 번호다. 조금 불안하지만 일단 받아본다. “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사장님, 기가 막히게 좋은 토지를 소개해 드립니다.” 웬 여성이 배우 전도연처럼 코 먹은 소리로 다짜고짜 나를 사장님으로 부르는 전화라면 일단 주의할 대상이다. “아, 일단 저는 사장님이 아니고요, 아니 그렇게 좋은 토지라면 직접 사시지 왜 저한테 전화를 거셨어요? 그리고 이 전화번호는 또 어떻게 아셨데요?” “..... " 딸깍. 이런 뻔한 내용으로 투자를 권유하는 기획부동산의 스팸 전화는 업계의 유명 인사 김미영 팀장이 은퇴한 이후 서부지검 검찰수사관 다음으로 자주 온다. 투자 소리에 혹할 만도 한데 워낙에 금전 다루는 감각도 젬병인데다 부채도 자산이라며 대출만 잔뜩 받아 둔 나는 빚 부자다. 요즘처럼 금리가 올라 월급에서 더 많은 액수의 이자가 공제될 때면 마치 몸속의 혈액이 빠져 나가는 기분이다. 업자들에게 당하고도 속이 상해 말을 안 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의외로 이런 묻지마 투자에 혹해서 거금을 날린 사람들이 주위에 전혀 없지는 않다. 글쎄, 나 같은 유리 지갑 월급쟁이한테는 해당 없으니 이걸 좋아해야 하는 건가? 『좋은 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