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크 가문의 유산을 세계로 확장시킨 인물은 바로 윌리 파크 시니어의 아들, 윌리 파크 주니어(Willie Park Jr., 1864년 2월 4일 ~ 1925년 5월 22일)였다. 그는 아버지의 위대한 유산을 이어받아 디 오픈 챔피언십에서 2회 우승(1887, 1889)을 차지하며 당대 최고의 선수로 활약했다. 그는 아버지처럼 뛰어난 퍼팅 실력으로 '퍼팅의 달인'이라는 별명을 얻었으며, 그의 플레이는 기술과 전략을 모두 갖춘 완벽한 골프로 평가받았다. 그의 1887년 우승은 스코틀랜드 프리스트윅에서 열린 대회로, 마지막 라운드에서 극적인 역전승을 거두며 팬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이어진 1889년 대회에서는 세인트앤드루스에서 열린 첫 번째 디 오픈이었는데, 그는 이 역사적인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모리스 가문의 홈 그라운드에서 파크 가문의 힘을 과시했다. 이 승리는 단순한 개인의 영광을 넘어, 파크 가문의 혁신적인 정신이 모리스 가문의 전통을 뛰어넘었음을 상징하는 중요한 사건이었다. 하지만 윌리 파크 주니어의 진정한 위대함은 선수 생활을 넘어선 곳에 있었다. 그는 프로 골퍼 최초로 골프에 관한 전문 서적인 '더 게임 오브 골프(The Game of Go
윌리 파크 시니어에게는 그 못지않은 재능을 가진 동생 뭉고 파크(Mungo Park, 1836년 ~ 1904년)가 있었다. 뭉고는 형과 함께 머셀버러에서 골프를 시작했지만, 젊은 시절 선원으로 20여 년간 바다를 누비는 삶을 선택했다. 당시 스코틀랜드는 해상 무역이 활발했고, 많은 젊은이들이 더 넓은 세상을 보기 위해 선원이 되곤 했다. 뭉고 역시 모험을 선택했고, 그의 인생은 바다 위에서 수많은 폭풍우와 파도를 겪으며 다져졌다. 거친 바다 생활은 그에게 남다른 강인한 정신력과 예측 불가능한 상황에 대한 대처 능력을 길러주었다. 그러나 그의 마음속에는 늘 골프에 대한 열정이 살아 숨 쉬고 있었다. 긴 항해 생활을 마친 후 1874년, 고향 머셀버러로 돌아온 뭉고는 다시 골프 클럽을 잡았다. 당시 그의 나이 38세. 이미 쟁쟁한 젊은 선수들이 골프계를 주름잡고 있었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를 잊었거나, 해맑게 웃는 얼굴 뒤에 숨겨진 그의 실력을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1874년 머셀버러에서 열린 디 오픈 챔피언십에 처음으로 출전하여 무려 우승이라는 믿기 힘든 결과를 만들어냈다. 그의 우승은 모든 골프 팬들에게 충격을 안겨주었다. 당시 디 오픈은 세인트앤드루
PGA 투어의 플래그십 이벤트로 불리는 더 플레이어스 챔피언십(The Players Championship)이 2025년 3월 13일(미국시간)부터 16일까지 미국 플로리다주 폰트 베드라 비치에 있는 TPC 소그래스(TPC Sawgrass, THE PLAYWERSStadium Course)에서 열린다. ‘제5의 메이저’로 불릴 만큼 강렬한 코스와 총상금 2,500만 달러(우승 상금 450만 달러)를 자랑하는 이 대회는 세계 최고의 골퍼들이 피트 다이(Pete Dye)의 걸작 코스에서 치열한 경쟁을 펼치는 무대다. 특히 이번 대회는 2연패 챔피언 스코티 셰플러(Scotty Scheffler)의 역사적인 3연패 도전과 한국 선수들의 활약 여부로 더욱 주목받고 있다. TPC 소그래스: 드라마와 도전의 무대 TPC 소그래스는 1982년부터 이 대회를 개최하며 골프 역사에 깊은 흔적을 남겼다. 플로리다의 대서양 연안에서 불과 1마일 떨어진 이 코스는 소나무 숲, 파인 스트로, 그리고 상징적인 17번 홀 ‘아일랜드 그린’으로 유명하다. 특히, 유명 선수들이 17번 홀에서 그린이 아닌 물에 공을 빠뜨리는 장면으로 더욱 유명하다. 피트 다이가 설계한 이 코스는 특정 스타일
골프란 무엇인가. 공을 홀에 넣는 단순한 행위인가, 아니면 인간의 욕망과 품격이 얽히고설킨 드라마인가. 나는 골프 코스에 선 선수들의 손끝에서 튀는 흙먼지와 바람에 실린 긴장을 느끼며, 이 스포츠가 품은 깊은 이야기를 떠올린다. 그중에서도 라이더컵은 승부의 치열함과 우정의 따스함이 공존하는 무대다. 1969년 잭 니클라우스가 토니 재클린에게 건넨 ‘위대한 컨시드(Concede)’는 그 정점을 찍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며 이 대회의 본질은 흔들리기도 했다. 승부의 칼날 위에서 우정이 빛나던 순간과 그 빛이 흐려진 장면들을 되짚으며,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라이더컵은 미국과 유럽의 골프 영웅들이 격년제로 맞붙는 대항전이다. 1926년, 브리티시오픈 전 미국과 영국 선수들의 친선 경기로 시작해, 오늘날엔 세계 정상의 12명이 3일간 혈전을 벌이는 무대가 되었다. 상금은 없고, 순금 트로피만이 승자를 기다린다. 이 대회의 이름은 영국 사업가 새뮤얼 라이더의 기증에서 왔고, 1979년부터 유럽 전체로 범위가 넓어졌다. 승부의 끝이 무승부로 끝난 적은 단 두 번, 1969년과 1989년뿐이다. 그중 1969년의 이야기는 골프 역사에 길이 남을 장면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