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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김대중의 골프히스토리] 파크 패밀리, 1부: 황무지에서 피어난 천재, 윌리 파크 시니어

 

윌리 파크 시니어(Willie Park Sr., 1833년 6월 30일 ~ 1903년 7월 25일)는 스코틀랜드 이스트 로디언의 월리포드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농부이자 정원사였으며, 어머니는 가정을 돌보는 평범한 가정이었다. 당시 스코틀랜드는 산업혁명의 물결 속에서 많은 변화를 겪고 있었지만, 시골 마을의 삶은 여전히 녹록지 않았다.

 

어린 윌리는 정규 교육이나 체계적인 골프 훈련을 받기 어려운 가난한 환경에서 골프와 운명적으로 마주하게 된다. 그는 머셀버러의 링크스에서 캐디로 일하며 독학으로 골프를 익혔다.

 

 

머셀버러는 세인트앤드류스만큼 유명한 골프의 성지는 아니었지만, 1567년 메리 여왕이 골프를 친 기록이 남아 있고, 1672년 머셀버러 올드 코스가 만들어져서 가장 오래된 골프 코스 중 하나로 남아 있다. 1754년에 문을 연 세인트앤드루스 올드 코스가 가장 오랜된 골프장으로 기록되어 있다. 머셀버러에는 수많은 아마추어와 프로 골퍼들이 모여드는 활기찬 곳이었다. 윌리는 이곳에서 매일 골프를 보며 어깨너머로 기술을 익혔고, 선수들의 스윙을 흉내 내며 자신만의 독창적인 스타일을 만들어갔다.

 

그의 특별한 재능은 머셀버러의 '베이커스 홀스(Bakers’ Holes)'라는 훈련장에서 빛을 발했다. 이곳은 해안가 모래밭과 거친 지형으로 이루어져 있어, 일반적인 잘 다듬어진 잔디 코스와는 전혀 다른 환경이었다. 윌리는 이곳에서 하루 종일 연습하며 자신만의 독창적인 퍼팅 기술을 완성했다.

 

그는 단순히 공을 똑바로 보내는 기술을 넘어, 지형의 굴곡을 읽고 모래 위에서 공이 굴러가는 방향을 예측하는 직관적인 감각을 익혔다. 이는 그의 플레이를 예측 불가능하면서도 매우 효과적이면서, 공격적인 스타일로 만들었다. 그의 퍼팅은 마치 마술과 같아서, 어떤 난해한 지형에서도 공을 홀컵에 넣는 놀라운 능력을 보여주었다. 이는 훗날 '퍼팅의 달인'이라는 명성을 얻는 초석이 되었다. 그의 플레이는 당시의 보수적인 골프 관념을 깨는 혁신적인 시도였다.

 

그는 단순히 골프 선수에 머물지 않았다. 19세기 중반, 골프 산업이 태동하던 시기에 그는 골프 클럽 제작자로도 명성을 떨쳤다. 머셀버러에 자신의 작업장을 차리고 수작업으로 클럽을 제작했는데, 특히 그가 만든 '파크 드라이버'는 멀리 나가는 것으로 정평이 나 당대 최고 인기 제품 중 하나였다.

 

당시 클럽 제작은 단순한 기술을 넘어선 예술의 경지였으며, 나무의 특성을 이해하고 골퍼의 스윙에 맞는 최적의 클럽을 만드는 일은 윌리 파크 시니어의 천재성을 증명하는 또 다른 방법이었다. 그의 클럽들은 '히코리 샤프트'와 '페이스' 부분에 독특한 디자인을 적용하여 다른 클럽들과 차별화되었고, 뛰어난 성능 덕분에 당시 최고의 선수들은 물론 아마추어 골퍼들 사이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다.

 

그의 클럽 제작 기술과 사업가적 기질은 파크 가문이 골프 산업의 중심 가문으로 성장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윌리는 1860년 3월, 인버레스크에서 수잔나 로(Susanna Law)와 결혼하여 10명의 자녀를 두었으며, 이 중 아들인 윌리 파크 주니어가 아버지의 뒤를 이어 위대한 챔피언이자 혁신가로 성장하게 된다.

 

윌리 파크 시니어는 이렇듯 황무지 같은 환경에서 스스로를 단련하고, 뛰어난 실력과 사업 수완을 겸비한, 진정한 의미의 개척자이자 천재였다. 그의 이야기는 모든 역경을 딛고 성공을 이룬 한 인간의 위대한 드라마였으며, 그의 삶은 파크 가문의 위대한 역사의 서막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그의 공격적인 플레이와 혁신적인 사고는 파크 가문의 DNA로 자리 잡게 되었고, 이는 후대 자녀들에게 그대로 전해져 골프계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는 원동력이 되었다.

프로필 사진
김대중 기자

포씨유신문 발행인겸 편집인
글로벌캐디원격평생교육원 원장
전, (주)골프앤 대표이사
건국대학교 국제무역학과 박사과정 수료
일본 국립 쓰쿠바대학 경영정책과 석사과정 특별연구생
미국 UC Berkeley Extension 수료
저서: 캐디학개론, 캐디가 알아야 할 모든 것, 골프 이 정도는 알고 치자, 인터넷 마케팅 길라잡이, 인터넷 창업 길라잡이, 인터넷 무역 길라잡이, 인터넷 무역 실무, 386세대의 인터넷 막판 뒤집기, 386세대여 인터넷으로 몸 값을 올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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