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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의 골프히스토리] 현대 골프의 완성자, 해리 바든 ③ : 전설이 된 '6승'과 대서양을 건넌 골프의 왕관
숫자 '6'은 골프 역사에서 가장 높은 성벽이다. 타이거 우즈도, 잭 니클라우스도, 그리고 현대의 어떤 천재들도 넘지 못한 기록. 바로 해리 바든의 디 오픈(The Open) 6회 우승이다. 1914년 그의 마지막 우승 이후 1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이 기록은 깨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바든이 이 대단한 금자탑을 쌓고 있을 때, 골프의 심장소리는 이미 대서양 건너 미국으로 향하고 있었다. 112년째 난공불락, "바든을 넘어라" 해리 바든의 디 오픈 우승 일지를 보면 입이 떡 벌어진다. 우승 연도 개최 코스 비고 1896년 뮤어필드(Muirfield) J.H 테일러와의 연장 끝에 첫 우승 1898년 프레스트윅(Prestwick) 1타 차 극적인 우승 1899년 세인트 앤드류스(St. Andrews) 잭 화이트를 3타 차로 따돌림 1903년 프레스트윅(Prestwick) 6타 차 압도적 우승 1911년 로열 세인트 조지스 (Royal St. George's) 아르노 마시와의 연장전 승리 1914년 프레스트윅(Prestwick) 제1차 세계대전 직전의 마지막 우승 그와 동시대에 활약했던 '그레이트 트라이엄비릿(Great Triumvirate, 위대한 3인)'의 멤버인 J.H. 테일러와 제임스 브레이드, 그리고 훗날의 피터 톰슨과 톰 왓슨이 5승까지는 도달했지만, 그 누구도 바든의 '6승' 고지에는 깃발을 꽂지 못했다. 현대 골프에서 선수들의 상향 평준화를 고려할 때, 이 기록은 사실상 '영구 결번'에 가까운 신화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위대한 3인, 골프계를 씹어먹다 당시 바든과 테일러, 브레이드 이 세 사람은 1894년부터 1914년까지 21번의 디 오픈 중 무려 16번의 우승을 합작했다. 이 정도면 우승컵인 클라렛 저그(Claret Jug)를 아예 세 사람의 집무실에 번갈아 가며 갖다 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영국인들은 골프에 관해서라면 "미국? 거긴 골프가 뭔지도 모르는 나라 아니야?"라며 코웃음을 쳤다. 하지만 그 오만함에 균열을 낸 인물이 바로 영국 골프의 자존심, 해리 바든 본인이었다는 점이 역사의 재미있는 지점이다. 1900년, "미국에 골프를 가르치러 가다" 1900년, 바든은 당시 신생 골프공 제조사였던 스팔딩(Spalding)의 후원을 받아 미국 투어에 나선다. 당시 미국인들에게 바든의 스윙은 그야말로 '외계인의 기술'이었다. 바든은 미국 전역을 돌며 전시 경기를 가졌고, 그해 열린 US 오픈에 출전해 가볍게 우승컵을 들어 올린다. 바든과 그의 라이벌 테드 레이는 미국을 방문할 때마다 엄청난 환대를 받았고, 그들이 보여준 우아한 기술과 압도적인 비거리는 미국 청년들의 가슴에 불을 지폈다. "저 사람들처럼 치고 싶다! 아니, 저 사람들을 이기고 싶다!" 바든은 미국에 골프의 씨앗을 뿌리고 물을 주었다. 그리고 그 씨앗은 불과 10여 년 만에 프랜시스 위멧이라는 거대한 나무로 자라나, 바든 본인을 집어삼키게 된다. 바든이 미국 골프의 수준을 끌어올려 준 덕분에, 역설적으로 골프의 중심지는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에서 미국으로 급격히 이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테드 레이의 "한 방"과 바든의 "정밀함" 이 시기에도 바든의 곁에는 항상 테드 레이가 있었다. 바든이 정교한 6승을 쌓는 동안, 레이는 1912년 디 오픈 우승을 차지하며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했다. 바든이 '교과서'였다면 레이는 '참고서' 혹은 '야생마' 같았다. 기록상으로는 바든이 압도적이었지만, 필드 위에서의 재미는 레이가 더 컸을지도 모른다. 파이프를 물고 숲을 가로지르는 레이의 장타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핀에 붙이는 바든의 아이언 샷. 이 두 저지 섬 소년들의 활약은 영국 골프의 마지막 황금기이자, 미국 골프 붐의 결정적인 기폭제가 되었다. 역사의 아이러니 바든의 6승은 영국 골프의 위대함을 상징하는 훈장이지만, 동시에 그가 미국에 골프를 전파함으로써 영국 골프가 주도권을 뺏기게 된 서막이기도 했다. 마치 가장 뛰어난 스승이 제자에게 모든 비법을 전수하고, 그 제자가 스승을 넘어서는 무협지의 한 장면처럼 말이다. 바든은 훗날 "미국인들의 열정은 무서울 정도였다"고 회고했다. 그 열정은 결국 1920년대 보비 존스의 등장으로 이어지며 골프의 역사를 완전히 뒤바꿔 놓게 된다. 다음 회차에서는 바든의 이 찬란한 기록도 막지 못한, 골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이변이자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이야기, 1913년 브룩라인의 기적을 본격적으로 다뤄보겠다. - 4부에서 계속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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