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원서를 번역할 때의 고민은 아마도 책 제목을 결정할때부터 시작되지 싶다. 초성, 중성, 종성을 모두 표기해야만 제대로 발음이 나는 한글 구조상 ‘부족’을 의미하는 원제 tribes의 음가를 ‘트라이브즈’ 라고 밖에는 표기하지 못하는 점이 그렇다. 실제로는 try, truck, train, tree, control의 용례처럼 특히 미국 영어에서 철자 t와 r이 겹치면 한국어 ‘츠’ 발음으로 변한다. 그러니 엄밀히 말하자면 ‘츠롸입스‘ 라고 발음해야 맞다. 모르기는 해도 출판사가 제목을 설정할 때 고민 좀 하셨겠다. 서평 서두부터 웬 발음표기로 딴지를 거는가 싶겠지만 오지랖 넓은 점은 그러려니 하고 널리 이해해 주시길. 각설하고, 이 책은 이미 2008년에 출간되어 TED에서 저자 강연 동영상도 돌아다니고 있으며 최근에야 한국어판으로 소개되었기 때문에 최신작도 아닌 데다 내용도 그리 충격적으로 새로울 것 없어 보인다. 그러나 인터넷을 중심으로 하나의 거대한 유기체로 작동하는 세상을 바라보며 ’부족‘의 개념을 도입하고 이에 맞는 변화를 말하는 등 참신한 생각으로 저자 세스 고딘 스스로 자신의 저술 방향에서 가장 중요한 변화를 일으킨 책이라고 하였다. 세계
요즘처럼 경제상황이 급변하고 기술변화가 요동치는 시대를 앞서나갈 수 있는 힘은 신선한 아이디어와 학과목 그리고 기술의 평생습득과 같은 지속적인 자기학습으로부터 나온다. 정보가 흘러넘치고 갈수록 학습량이 늘어나는 4차 혁명 시대에 더 많은 것들을 성취하고 타인들과 견주어 우뚝 서려면 우리에게는 어마어마한 학습량을 소화하는 능력이 요구된다. 예전보다 살기 좋아진 정보화 시대의 대가라고나 할까, 그래서 요즘 청소년들은 기성세대와 비교하면 일찌감치 엄청난 양의 학습 노동에 시달리는지도 모르겠다. 캐나다 밴쿠버 지역의 대학에서 무역학을 전공한 저자는 졸업 직후 실제 취업에는 별 소용없는 공부였음을 알게 되고 현장에 필요한 지식 습득의 필요성을 절감한다. 이미 자신과 같은 경로를 밟아 단기간에 새로운 지식과 기술을 습득한 사람들을 만난 그는 초단기간의 압축적 학습법을 실천에 옮겨 큰 효과를 거두게 된다. 일례로 한 달간 초상화 그리기 프로젝트를 실행하여 이를 입증하기도 하였다. 저자가 직접 명명하지는 않았지만, 이 울트라러닝은 학습자가 직접 설계한 학습법으로 기술과 지식을 집중 습득하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세부적인 학습전략은 학습자에 따라 다양할 수 있으며 학습자의
예전에도 그랬겠지만 요즘 들어 더더욱 존경하기 어려워진 직업 가운데 하나가 바로 정치인이 아닐까 싶다. 수년 전 타계한 정의당 노회찬 의원의 경우는 살아생전 죽어라 욕을 해대던 비정상적인 언론매체들과는 대조적으로 조문객들이 줄을 서서 분향소를 찾기도 하였지만, 대체로 정치인들은 자신의 권력욕을 채우기 위해 드러난 진실이나 애도해 마땅한 일마저도 정치적으로 교묘하게 이용할 줄 아는 부류로 이해되어왔다. 저자가 미국인이고 이 책의 배경이 미국 사회인 점을 고려하면 민주주의 제도를 우리보다는 먼저 시작했던 선진국이니까 그래도 여러 면에서 조금은 낫지 않을까 싶었으나, 공공의 이익과 다수의 행복을 바라고 실천에 옮겨 국민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는 정치인이 그리 많지 않은 건 미국이나 우리나 비슷한 것 같다. 책 서두에 인용된 세르반테스의 말처럼 ‘과학은 그 자체로 거짓말을 하는 법이 없다. 거짓말을 하는 것은 과학을 빙자한 인간들이다.’ 그렇다면 우리 대중에게는 과학을 앞세운 현혹적인 언사로 국민을 섬기지 않는 정치인들을 골라 낼 줄 아는 안목이 필요하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그들의 거짓 술수와 그로 인해 저지르는 우리의 오판이 결국은 우리 자신의 목을 조이는 결과
학교 수업 시간표처럼 사람의 인생에도 순서와 절차를 따른 일정을 적용할 수 있을까? 굳이 이 책을 읽어보지 않더라도 초등학교 취학부터 고등학교 졸업까지는 누구나 비슷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쉽사리 예측할 수 있겠다. 자, 그러면 첫사랑을 만나고 대학을 졸업하고 첫 직장에 취업하고 인생 처음 자동차를 구매하고, 결혼과 출산, 첫 주택을 구매하는 시기 등 점점 수많은 변수가 더해지는 인생의 시간표를 작성해보면 어떨까? 궁금해져서 묻는 말이기는 하지만 과연 과거에 누구라도 이런 시도를 해 보기는 했을까? 사람은 본능적으로 자신의 얘기를 꺼내어 타인에게 드러내는 동시에 이에 대한 타인의 반응을 알고 싶어 한다. 나의 존재를 알리고 싶은 만큼이나 나에 대한 타인의 생각도 궁금한 것이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컴퓨터가 문명의 이기로 자리 잡으면서 직접 사람과 사람이 만나야 상당 부분 해결되던 자신을 알리고 타인을 알아내는 이 과정이 더 복잡하고 어려워진 것 같다. 직접 자신을 드러내지 않을 수 있는 인터넷상의 익명성이 이러한 직접적인 절차를 생략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고 더욱이 정보의 양도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그 진위를 판별하기부터 쉽지 않게 되었다. 이런 현상을 생각하
얼마 전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이란 용어가 심심찮게 회자되던 일을 기억들 하시리라. 사실 꼭 지적이지는 않더라도 사람 사이의 소통을 위한 대화는 필요한 것이고, 반드시 지식의 수준에까지 이르지 않아도 대화 자체는 가능하다. 그러나 허구한 날 안부 인사나 날씨 혹은 취미만 묻고 답하자면 대화의 밑천은 금방 동나게 마련. 사람 살아가는 모양새도 이와 비슷하다는 생각이다. 그냥 일하고 밥 먹고 잠자고 휴일 되면 늘어지게 늦잠자고 일어나 한 잔 걸치고 또 늦잠자고.. 이거 뭐 인생에 무슨 재미랄 게 있겠는가? 그런데 우리는 간혹 주위에 재미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목격한다. 대체로 바쁜 모습에 활력이 넘치고 즐거워 보인다. 나만 우울한 건가 저 이는 어떻게 저리 다를 수 있지? 괜한 자괴감이 몰려온다. 이 책의 저자는 빵 굽기나 페인트 칠 등 나는 잘 할 줄 모르지만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상의 소소한 기술에 집중하고 익히면 우리의 일과 삶이 송두리째 바뀐다고 말한다. 이런 기술을 익혀 볼 것을 권유받는다면 아마도 ‘대개는 시간이 없다‘는 흔한 답변을 하고 말 것 같다. 그런데 내게 정말 그런 소소한 기술이 있다면? 더구나 숙달에 필요한, 지루하도
이 책은 지금의 20대 계층이 처한 경제적 상황과 정치 사회의식 등에 미치는 영향을 다룬 분석 보고서에 저자가 불평등 세습에 관해 2017년에 작성한 글을 엮고, 기존 연구와 통계청, 고용노동부의 통계 자료 및 기관에서 만든 원시 자료를 가공 분석한 것이다. 다양한 형태, 상세한 수치의 그래프와 도표를 수록하여 독자의 이해를 돕고 있다. 모두 8개의 장으로 구성되었으며 다음과 같이 요약해 보았다. 1장. 20대가 진입하는 노동시장의 특성 부모 세대의 소득 불평등이 자녀 세대로 이어지는 핵심경로는 자녀 세대의 노동시장 진입 당시 임금격차(처음 취업했을 때의 임금소득의 차이)에 있다. 100인 이상 중소기업 취업자 초봉을 100으로 할 때 대졸 취업자 초봉은 159, 25년 장기 근속할 경우 194 대 340으로 벌어진다. 노동시장에 진입하는 청년들은 번듯한 일자리, 즉 대기업이나 공기업의 정규직, 공무원을 희망한다. 숫자만 놓고 보면 일자리의 양은 적지 않으나 번듯하고 괜찮은 일자리 창출이 적다는 것이 진짜 문제이며 이것이 기를 쓰고 명문대에 진학 하려는 이유이다. 취업 시장은 서열 높은 대학 졸업자들이 상대적으로 대규모 사업체, 상용직 및 정규직을 더 많이
이 작품의 줄거리를 아주 짧게 요약하자면, 고아인 올리버가 고아원과 구빈원(workhouse)의 구속에서 도망쳐 런던에 온 후, 범죄자들의 세계에 빠지게 되고 우여곡절과 파란만장한 사건들을 거치면서 결국은 그들의 굴레에서 벗어나 행복한 삶을 얻게 되는 과정을 기록한 작품이다. 그러나 이 작품을 지나치게 단순화시켜 권선징악으로 끝나는 동화나 촌뜨기 소년의 인생 역전 로또 맞은 이야기쯤으로 여길 수 없는 근거는 바로 작품의 탄생 배경에서부터 찾아볼 수 있다. 19세기 들어 영국은 산업혁명을 통해 사상 유례없는 번영을 누린다. 증기기관 발명을 통해 철도와 선박이 등장하고 통신 시설이 발달한다. 생활의 중심 역시 농촌에서 도시로 바뀌어 영국 사회를 지배하던 귀족은 몰락하고 도시 자본가가 세력을 얻기 시작한다. 수제품은 이제 기계로 대량 생산되고 기술이 없어도 노동력만 있으면 누구나 공장에서 일할 수 있어 가난에 찌든 빈민층은 어린아이까지 공장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었다. 사실상의 아동 노동을 허용한 악법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영국 정부는 공리주의에 근거하여 싼 임금으로 빈민을 쥐어짜고 죽을 때까지 노동력을 착취한다. 사람이 가난한 건 개인이 나태하고 무절제하기
평생 직장에서 평생 직업 시대로 우리는 지난 1997년 말의 외환위기 사태를 겪으면서, 한 번 입사하면 그곳에서 정년퇴직하는 평생직장보다는 평생직업의 필요성을 절감하였다. 안정적인 생계수단에 안주하며 삶을 만들어 나가는 방식에 근본적인 변동이 생긴 것이다. 변화하는 주변 여건에 따라 움직이지 않으면 안 된다는 크나큰 교훈을 얻었다. 매일 아침마다 오늘도 무사히 퇴근을 주문하며 나서는 직장의 개념부터 흔들린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 아침 일어나 등교하기가 참 쉽지 않다. '학교가기 싫어요' 라고 말하면 엄마에게 혼나는 건 학생이나 교사나 피차일반이다. 저자는 일이란 사회의 일원으로 이 세상에 존재하기 위한 입장권이라고 말한다.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꼭 구해야 하며,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니 최소한 이 입장권만은 꼭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한다. 그런데 우리는 이렇게 중요한 입장권을 획득하는 단계부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셈이다. 공정하지 못한 경쟁과 공평하지 못한 평가를 시작으로 입장권을 손에 넣지 못하는 현상을 겪고 있다. 저자의 말이 논리적이고 설득력을 지닐수록 우리 학교에 미치는 반향은 더욱 더 파괴적으로 느껴진다. 모든 학생들이 대학 진학에
비워진 젊음의 노트 스무 살. 저자는 한참 인생의 즐거움을 맛보기 시작할 나이의 청년인데 가장이 되어야 했다. 고등교육을 받고 안정된 직장을 찾고 행복한 결혼으로 인생을 꿈꿀 나이인데 이 모든 것을 뒤로하고 오롯이 가장의 책임만 남았다면? 그것도 한참 일할 나이에 치매에 걸린 아버지와 함께. 아직도 부모님의 보호 아래 지낼 수 많은 또래들을 생각해보자 스무 살에 가장이 되는 경우가 얼마나 있을런지. 뭐라도 해 볼 스무 살 나이에 아버지가 쓰러졌다. 당장 병원비부터 해결해야 하는데 마땅한 재원은 없고 친척들마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전세보증금을 빼다가 급한 불은 껐지만 알코올성 치매인 아버지는 두 차례 더 쓰러져 병원 신세를 진다. 남들보다 일찍 어른이 된 저자의 삶은 피폐해져만 간다. 이러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그는 도망가거나 회피하지 않았다. 주위로부터의 변변찮은 도움에 기대는 대신 적극적으로 자신을 구제하고 나선다. 예전보다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도움의 손길을 얻는 것부터 행정절차가 복잡하고 걸려있는 조건도 한둘이 아니다. 군에 입대하면 눈높이 보호자로 아버지를 돌봐줄 사람이 없어지므로 군 복무를 대체하는 산업기능 요원으로 일하면서도 그는 영화인이 되
협력, 인류의 디폴트 값 인간은, 혼자서는 절대 살 수 없기 때문에 항상 타인과 함께하는 시공간을 의식하며 살아갈 수 밖에 없다. 역설적이게도 인류 문명이 발달할수록 피해갈 수 없는 이 딜레마에서 우리는 절대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 또한 딜레마일 것이다. 진화론적 입장에서 보자면, 기본적으로 상대방보다는 내가 더 낫고 옳다는 자세를 취하지 않으면 여러모로 개체 존속과 종족 보존에 유리할 것이 없기 때문에 타인보다 자신을 우선시하고 존중하도록 설계되었다는 주장은 매우 설득력이 있다. 열등감이라는 의식은 여기에서 비롯된다고 생각된다. 기본적으로 타인과 나를 비교하게끔 설계되어있는 바탕을 도대체 어찌할 것인가. 문명사회 이전에는 협동과 신뢰가 구성원 모두를 위한 대승적 생존 전략이었기 때문에 열등감은 그리 큰 쓸모가 없어 보였다. 그러나 자본이 인간보다 더 우위를 차지하게 된, 또는 그러한 풍조가 너무나도 지배적인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을 획득하는 개개의 능력차는 극명하게 드러날 수밖에 없다. 결국 여러 얼굴로 우리를 괴롭히는 열등감 때문에 타인의 시선을 의식해야 하고 그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게 되었다. 책 제목이 어째서 ‘비교하지 않는 연습’인지 이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