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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레저

[유선종 엣지리뷰16] 작은 몰입

가슴 두근거리는 인생의 시작, 몰입.

 

얼마 전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이란 용어가 심심찮게 회자되던 일을 기억들 하시리라. 사실 꼭 지적이지는 않더라도 사람 사이의 소통을 위한 대화는 필요한 것이고, 반드시 지식의 수준에까지 이르지 않아도 대화 자체는 가능하다. 그러나 허구한 날 안부 인사나 날씨 혹은 취미만 묻고 답하자면 대화의 밑천은 금방 동나게 마련.

 

사람 살아가는 모양새도 이와 비슷하다는 생각이다. 그냥 일하고 밥 먹고 잠자고 휴일 되면 늘어지게 늦잠자고 일어나 한 잔 걸치고 또 늦잠자고.. 이거 뭐 인생에 무슨 재미랄 게 있겠는가?

 

그런데 우리는 간혹 주위에 재미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목격한다. 대체로 바쁜 모습에 활력이 넘치고 즐거워 보인다. 나만 우울한 건가 저 이는 어떻게 저리 다를 수 있지? 괜한 자괴감이 몰려온다.

 

이 책의 저자는 빵 굽기나 페인트 칠 등 나는 잘 할 줄 모르지만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상의 소소한 기술에 집중하고 익히면 우리의 일과 삶이 송두리째 바뀐다고 말한다. 이런 기술을 익혀 볼 것을 권유받는다면 아마도 ‘대개는 시간이 없다‘는 흔한 답변을 하고 말 것 같다. 그런데 내게 정말 그런 소소한 기술이 있다면? 더구나 숙달에 필요한, 지루하도록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아도 된다면? 흠... 이건 좀 재미있겠는걸?

 

이 책은 크게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작은 몰입이 나를 바꾼다. 2부 바로 써먹는 일상의 작은 기술들. 3부 일과 삶, 성공의 룰이 바뀐다. 물론 번역본이니까 차례의 제목도 옮긴이가 재량껏 만들었으리라. 사실 분량이 가장 많은 2부는 실생활에서 발견하는 구체적인 기술, 예컨대 분재를 키운다거나 가격 협상을 잘 한다거나 15분간 주제 발표하기 등이라 자신의 취향에 맞는 부분이라면 자세히 읽어보는 게 좋겠다. 내게는 책을 거꾸로 거슬러 오르며 읽는 이상한 습성이 있는데 이 또한 저자가 말하는 창의성을 키우는 4가지 가운데 ’역발상‘에 해당되는 것 같다. 앞에서부터 차례로 읽자면 간혹 지겨운 때도 있는 법이니까.

 

일상적인 얘기로 돌아와, 다들 인정하겠지만 특히 가장이라면 늘 가족과 일터에서 맡은 업무와 해야 할 일에만 쫓겨 사느라 하고픈 일도 좀처럼 없고 그럴 여력도 잘 없는 게 우리네 현실 아닐까. 가장 마음에 와 닿은 구절은 ’자신에 대한 흥미를 가질 시간을 허하라‘였다. 누군가 ’저녁이 있는 삶‘이란 용어를 먼저 써먹은 것도 같다만 자신에 대한 흥미는 우선 먹고사니즘에서 좀 벗어나 있어야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아무튼 손에 잡히는 소소한 것부터 시작하자는 마이크로마스터리(micromastery)의 세계로 진입하자면 무엇을 하든 일단 움직이고 보아야 한다. 나의 경우 6년 쯤 전 완전 초보자로 시작한 드럼 연주가 그것이다. 무술의 ’ㅁ’자로 모르던 사람이 1년 만에 검은 띠를 매고 나오더라는 일례처럼, 서당개 3년, 아니 드럼 동호회 3년 만에 악보도 읽을 줄 알게 되고 여러 사람들 앞에서 가슴 두근거리는 발표도 하게 되니 실로 작은 몰입은 위력적이다. 그렇게 시간과 돈과 애정을 쏟았던 드럼이었건만 두 자녀를 대학에 보내느라 활동을 잠시 유보한다던 것이 벌써 3년째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대신 지금은 배드민턴에 푹 빠져 정기적으로 레슨을 받고 있다. 물론 신나는 음악을 들을 때 마다 공중에 대고 드럼치는 손짓 발짓은 여전하다. 

 

저자는 흥미가 곧 취미가 되고 취미가 곧 장기로 이어지고 장기가 곧 생계수단이자 수입원이 되는 '덕업일치'의 예를 많이 들고 있는데, 취미생활 몇 년 했다고 수입에까지 영향을 끼치기야 하겠냐는게 솔직한 생각이다. 나 자신보다는 오히려 드럼 동호회원인 어느 특이한 여성분의 인생 이야기가 이 작은 몰입의 훌륭한 사례가 아닐까 한다. 갓 60을 넘긴 이 ‘누님’은 속기사, 간호조무사, 요양보호사, 노무사 등등 보유한 기능 자격증만 20개가 넘고 지금도 요리학원에 다니며 한식 중식 양식 세 분야의 조리사 자격증 그랜드 슬램을 목표로 하신다며 실제로 학원에서 만들어 온 음식을 동호회원들 간식으로 퍼다 주곤 하셨다. 작은 몰입을 이미 실천에 옮기고 있는 이 분의 실제 직업은 조합병원의 대표이사님이다. 자신의 모든 시간을 온전히 흥미로 채우고 사시는 이분의 겉모습은 누가 보아도 이제 마흔 중반으로 보인다.

 

재미나게 사는 인생은 시간도 더디 흐르게 하는가보다.

 

한 가지 영역에서의 mastery는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학습에서 연쇄적인 상승작용을 일으킨다. 유명한 핵물리학자 아인쉬타인이 피아노 연주회로 연구기금을 모았다는 일화처럼 심지어는 전혀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분야에서도 심심찮게 발견된다.

 

인간에게는 무엇이든 배울 능력이 있고 그럴 수 있는 존재임을 자각해야 한다.

 

우리네 삶이 정신에 족쇄를 채우도록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된다.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자신을 북돋아 주고 지레 짐작으로 부정적인 결과를 예측할 필요조차 없다. 100년도 못 사는 짧은 인생, 재미나게 살다 가야하지 않겠나.

 

(사족) 이 책을 번역 출판한 <엔터스 코리아>는 한 때 나와 인연이 닿을 뻔 한 곳이다. 10여 년 전 출판사의 초벌 번역가로 응모한 적이 있었는데 두어 차례 심사를 받아 보고 더 이상 진전을 이루지 못하였다. 지인들은 머리 아픈 번역 일을 굳이 왜 하려드느냐며 말리기도 했는데, 그 때 이후 꾸준히 마이크로매스터리를 실천하였더라면, 혹은 앞으로 한 20년만 노력하면 일과 삶 면에서 또 다른 재미를 느끼며 살지 않을까?

 

[골프앤포스트=유선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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