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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레저

[유선종 엣지리뷰36] 최배근 대한민국 대전환 100년의 조건

정치 민주화에 이은 경제 민주화 그리고 사법 민주화를 위한 전제 조건

 

지금껏 사귀어오던 그녀가 돌변했다. 내 능력으로 도저히 어찌해 볼 수 없는, 지금까지의 나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요구하면서 더 이상의 연인 관계를 지속하지 못할 것 같으니 그냥 친구로 남겠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해온 것이다.

 

내 이름은 20세기, 그녀의 이름은 21세기다.

 

저자가 ‘새로운 처음’형 충격이라 정의한,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갈라지는 듯한 이런 대사건은 듣도 보도 못한 충격과 함께 피해 규모도 증가하며 점점 빈번해지고 있다. 게다가 지금까지 인류가 축적한 지식, 지혜, 경험 등으로 예측이 어렵고 예측하더라도 단기간 내에 제대로 대응할 수 없어 더욱 난감하다. 특히, 지구 방위대를 자처해온 빅 브러더 미국은 지난 2001년 미국 정부에 베트남전 철수와 맞먹는 모욕감을 안겨준 9.11 테러를 겪으면서 자국은 타국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는 있어도 타국으로부터 영향은 받지 않는다는 중심주의 세계관에 기초한 안보 주권을 훼손당했고, 최근 발생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방역에 실패하면서 사상 유례없는 무기력을 드러냈으며, 미국발 금융위기와 유로존 위기 등을 겪으면서 최첨단이라 믿고 있던 금융 시스템의 붕괴로 세계 경제를 위협하게 되었다.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사고나 호주 산불사태 역시 인간의 이성과 지식체계로는 예측 불가능한 대사건들이었다. 

우리는 지금 낡은 집이 무너지고 있으나 새로 들어가 살아야 할 집은 준비가 안된 상황에 놓여있다.

본문 38쪽

 

이러한 ‘새로운 처음’의 여파는 우리 사회 모든 영역에 상상을 초월하는 충격과 변화를 초래하고 있다. 판검사-의사-언론인-고위공무원-목사 등 선망받던 직업군의 부패와 타락, 권위의 상실, 사익 추구를 위해 공익을 훼손하는 특권층 카르텔의 균열 등 공정성을 화두로 하여 우리 사회를 뒷받침하는 모든 제도를 재검토하도록 압박하고 있다. 정해진 내용을 가르치고 정답을 찾는 방식에 머무르며 미래를 대비하지 못하는 교육은 청년들을 시대 부적응자로 살아가도록 방치하고 있다.

 

이미 25년 전부터 죽은 교육을 거부하는 운동이 시작되었지만, 여전히 반복되고 있는 현실은 암울하기 짝이 없다. 굴뚝으로 상징되는 제조업 위주의 산업구조와 아직도 그 틀에 맞춰진 사람들의 인식은 문화 실패로도 드러나는데 이는 미국이나 서유럽 국가에서 더욱 큰 문제로 드러났다. 이미 우리 생활에 성큼 들어선 디지털 세계는 모든 것을 연결하고 궁극적으로 소비자와 시민에게 권력을 부여하며 산업 문명의 종언을 고하고 있다. 

‘사회라는 것이 존재하기는 하는가’라는 의문이 나타나고, 특히 90년대부터 서구 사회에서 ‘무엇을 그리고 누구를 위한 성장인가?’라는 화두와 ’시민사회의 재건설‘에 대한 필요성이 부상하였다.

본문 91쪽

 

 

이 책은 20세기와 21세기 사이에 전혀 다른 패러다임의 충돌 원인과 양상을 영역별로 비교 분석하며 인류 사회가 해야 할 일을 제시하는 1장, 산업화 시대의 세기말적 현상으로 각 분야에서 속속들이 드러나는 20세기의 한계점들을 짚어보는 2장, 한국 사회에서의 산업화 모델이 가진 문제점을 집중하여 조망하고 위기의 청년 세대에게 희망을 걸 수밖에 없음을 토로하는 3장, 디지털 생태계의 특징과 이를 맞이하기 위한 사회, 교육, 경제 분야의 조건들을 두루 살펴보는 4장, 그리고 새로운 시대가 열리는 인류 세계를 위해 우리나라가 가진 역사적 과제를 받아 안아야 한다고 말하는 5장으로 구성되었다. 저자는 전공인 경제사를 기초로 한 통찰력과 풍부한 자료 해석과 날카로운 진단으로 ‘새로운 처음’의 본질을 파악하고 대처방안을 모색하고자 한다. 

책 제목에 저자 본인의 이름을 넣는 경우는 흔치 않은 것 같은데 아마도 경제 전문가로서 자부심의 표현이리라. 그리고 저자가 저명한 경제학자라고 해서 경제만 다루라는 법은 없다. 인체의 모든 곳에 뻗어 있는 혈관과 혈액처럼 자본주의 체제에서 돈과 무관한 곳은 어디에도 없다. 이와 마찬가지로 경제학자는 특히 자본주의 체제에서라면 모든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다룰 수밖에 없을 것이고 자연스레 저자는 과거와 미래를 넘나들며 역사와 교육을 비롯한 제반 사회문제 역시 골고루 언급하고 있다.

더없이 훌륭한 내용 이외에 가독성과 집중력에 관련된 책 구성의 묘미에 대해 언급해본다. 대부분의 독자는 저자가 어떤 소주제나 질문, 현상을 요약할 때 첫째, 둘째 등의 신호를 주며 내용을 정리 압축해 주는 데 익숙하리라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을 읽는 독자는 문단 정리 기술과 문맥을 연결 능력이 향상될 것 같다. 예컨대 어떤 논점에 대하여 네 개의 요점을 제시한다고 하자. 첫째와 둘째 요점은 한 페이지에 있어 금방 파악되는 반면, 세 번째 요점을 정확히 발견하지 못했는데 네 번째 요점이 다섯 장 뒤에 발견된다면 혹시라도 놓쳤나 싶어 앞뒤로 다시 훑어보게 되는 경우이다. 음식에 비유하자면, 끝내주게 맛있는 팥빙수 맛집에서 그릇에 넘치도록 퍼담아 주니 푸짐해서 좋긴 하지만 내용물이 넘친다. 그릇 주변이 지저분해질뿐더러 4인분 주문한 음식에 숟가락이 3개뿐임을 발견하고 어색해지는 느낌이라 하겠다.

1990년 무렵 필자의 가족은 먼저 미국에 이민 간 친척의 초청으로 미국 시민이 될 기회가 있었으나 우여곡절 끝에 15년이나 공들였던 노력이 무산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최근 코로나 전염 사태에 대처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미국 정부의 무능과 공공보건보다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는 개인의 자유가 더 소중하다며 총기를 들고 거리로 뛰쳐나오는 미국인들의 수준을 보면서, 우리는 막연히 동경하던 선진국의 허상을 여실히 깨닫는 동시에 예전과 달리 선진국과 겨뤄 꿀리지 않는 국격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격변의 21세기를 맞아 한반도가 새로이 맞이할 운명을 개척하려면 우선 사익 추구와 기득권 유지에만 관심을 쏟는 매판적 보수 세력의 해체를 말하는 동시에 AI보다 못한 노동력을 양산하는 교육 체계를 바꿀 수 있는지, 기후 위기의 파국을 막을 수 있는지, 헬조선이 주도하는 통일 또는 남북 통합이 가능한지에 대한 해답을 촉구하고 있다. 독자 여러분은 지금 대한민국호의 좌표를 정확히 짚어주는 일등항해사를 만나고 있다.

 

[골프앤포스트=유선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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