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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레저

[유선종 엣지리뷰38] 우리가 원하는 것은 인생에 도움이 되는 수업.

덴마크의 저널리스트와 한국의 출판인이 3년에 걸친 협업을 통해 교육의 본질을 들여다보는 책을 기획하여 마침내 펴냈습니다. 학교에서 ‘삶’을 가르칠 수 있는지를 묻고 싶었다면서, 실제 덴마크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교육 현실을 있는 그대로 알리는 동시에 훌륭한 교사상을 받은 10명의 덴마크 교사들이 이 땅의 교사들에게 건네는 조언을 실었습니다. 

 

얄팍하고 쉽게 읽히지만 단순하면서도 지극히 현실적인 질문을 접하면서 참으로 표현하기 어려운 착잡하고 복잡한 심경으로 책을 덮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가 늘 해답이 있음을 확신하면서 늘 던져왔던 질문인데, 그들에게는 현재 진형형으로 일어나고 있는 현실이지만 우리에게는 아직도 해결책을 논의할 뿐 실행시키지 못하는 공허한 질문인 것만 같았습니다. 

 

이 책에서 제시하는 열 가지 질문들은 공교육의 모든 교육적 노력과 의미가 궁극적으로는 대학 입시 하나로 귀결되는 비현실적인 현실을 타파하기 위해 헌신하는 교사들에게 어쩌면 가혹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습니다. 질문을 받을 수 있기는 하되, 해답의 열쇠는 교사들이 쥐고 있는 게 아니란 생각에 무기력감만 더해옵니다. 수학도 즐거울 수 있다지만 수학 포기자와 기초학력 미달 학생들은 점차 늘고 있으며, 시험과 점수가 더 중요한 나머지 결과가 좋으면 인성마저도 포장될 수 있으며, 학교 또는 학업을 중도에 포기하면 패자 부활전은 기대하기 어렵고, 겨우 한 해 차이인 나이와 학년으로 차단된 세대 간의 구별의식은 타자화에 힘을 실어주며, 평생 배우고 즐기며 주체적인 삶을 살기보다는 자격이나 시험 등 일정 목적을 달성하면 휘발유처럼 증발해버릴 학과목 시험에 목을 매게 되며, 성적이 행복의 전부는 아니라면서 대부분이 되는 기현상이 나타납니다. 너무 비관적이 아니라면, 이런 여건 속에서 교사들이 학생들 삶의 조력자 역할을 과연 충실히 해 낼 수는 있는지 매일 자문하게 됩니다.

 

종종 민원의 소지가 있는 중요한 사건이 생길 때마다 교육부에서 학교장 앞으로 떨어지는 책임감의 총량은 성과급보다 더 빠르게 일선 교사들에게 고루 분배되는 것 같습니다. 학교 현장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대응책으로 일선 교사들의 피로감과 무력감은 커집니다. 다행히도 요즘 코로나의 위협은 일상적인 감기 수준으로 많이 줄었습니다만, 특히 코로나 바이러스의 발발을 계기로 학교는 가르치고 배우는 장소가 아니라 방역의 최전선으로 탈바꿈해야 했습니다. 교육과 보육의 경계가 분명치 않은 채 교사는 아직도 제대로 된 전문직 대우를 받지 못하며, 인공지능과 정보혁명 시대를 맞아 사라질 위기에 놓인 직업군으로 언급될 때마다 가슴 철렁합니다.

 

교육청에서 보내오는 공문의 머리말에는 ‘민주 시민 양성’의 글귀가 항상 들어있습니다. 교육청과 교육부 사이의 관계부터도 그리 민주적이지 않은 것 같고, 학교와 교육청 사이도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가장 교육적이고 민주적이어야 할 학교부터 가장 비교육적이고 가장 비민주적인 행태들로부터 안전을 보장받지 못합니다. 이러한 여건에서 학생들을 교양과 양식을 갖춘 세계시민으로 성장시킬 수 있을지 늘 의문입니다. 당장 학생회부터 자치권은커녕 법적으로 그 구성을 보장받지 못하는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시민 의식을 기르는 것, 즉 학생들이 사회로 나가 책임 있는 시민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준비시키는 것이 덴마크 교육의 핵심이다. 민주적인 방식으로 자신의 주장을 펼치는 법을 배우고 상대방을 배려하며 돕는 법을 배운다.

- 124쪽

수능 시험 학과목의 하나로 명목상의 언어 교육이 되어버린 우리네 영어 교육과는 달리, 실제 생활에 사용 가능한 수준을 목표로 사용 능력 배양을 위주로 한 덴마크의 영어 교육도 눈길을 끕니다. 이를 위해 상위 10%의 승자만이 수업을 이해하고 따라올 수 있는 구조를 타파하고, 시험의 부담을 최소화하며, 시간을 두고 오래 배워도 사용할 수 있는 외국어 습득이 가능한 여건과 기회를 주어야겠습니다. 아울러 영어 교육의 궁극적 목적은 타인 앞에서 자신의 의견을 당당히 밝히는 연설 발표 수준이 되었으면 하는 게 개인적인 바람입니다. 지금처럼 영어에 대한 지식을 묻는 방식에서, 말과 글로 꺼내어 놓을 줄 아는 사용 능력의 향상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수행평가, 수준별 수업, 원어민 교사 도입 등 지금까지의 교육 정책에 주요 모델이 되어 온 미국식 교육이 그 취지에서 벗어나 우리의 교육 현실 개선에 끼치는 긍정적 영향이 미미하다면, 굳이 지속하기를 고집하기보다 이제는 과감히 벗어나 실제 삶을 이끌어 갈 수 있는 교육 체제로의 전환과 도입을 적극적으로 고려해 보아야 합니다. 30여 년 전의 교육 현실보다 크게 나아지는 게 없는 것 같은데, 또다시 다음 세대가 구태를 반복하게 만드는 죄를 지어서는 안 되겠다는 마음입니다.

 

[골프앤포스트=유선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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