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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레저

[유선종 엣지리뷰 48] 노동의 시대는 끝났다

미덥잖은 미래를 걱정하는 모든 노동자의 필독서

 

기술의 진보가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는다는 오랜 논란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돌아보면 우리 인류는 항상 기술의 발전으로 일자리가 없어질 것을 걱정해왔다. 18세기 후반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나 제조업자들이 앞다투어 기계를 도입해 대량생산을 시작하자, 자동화로 자신들의 일자리를 빼앗길까 두려운 사람들이 기계를 부수는 러다이어트 운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실제 미국 뉴욕의 거리를 메우고 다니던 마차와 말들은 대량생산된 포드 차량으로 대체되었다. 신기술로 인해 또 다른 새로운 산업이 나타나 일자리가 생길 것이라는 의견도 있었지만, 사람들은 이번엔 다르다면서 곧 큰 재앙이 도래할 것처럼 우려한다. 최근 IT 기술의 발달로 등장한 인공 지능이라는 신기술은 인류의 새로운 걱정거리로 등장했다. 과연 우리 인간의 일자리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저자는 앞으로 우리의 삶이 어떻게 전개될지 체계적으로 분석하면서, 먼저 그간 인간의 노동이 기계의 자동화에 잠식됐음에도 불구하고 인간 노동에 대한 수요는 계속 존재하였고 왜 일자리 부족 현상은 발생하지 않았는지를 설명한다.

 

자동화의 초창기에는 인간이 밀려나지만 다른 영역에서 보완 작용이 일어나 걱정과는 다르게 노동의 수요가 증가하였는데 그 이유는 첫째 생산성의 향상, 둘째 기술 진보로 인한 파이 자체의 확장, 셋째 탈바꿈 효과 때문이었다. 기술의 진보가 인류에게 위협적이긴 했지만, 동반자이자 친구이기도 했다. 걱정과 달리 인간의 노동을 찾는 수요는 늘 충분했다.

하지만 20세기 후반 무렵 그리고 21세기에 접어들면서 지금까지의 공식은 들어맞지 않게 된다. 기술이 진보함에 따라 이러한 기술을 다룰 줄 아는 고숙련 노동자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였고, 어렵고 힘든 일은 기계가 하는 한편 단순 노동자의 수요도 함께 증가한다. 예컨대 저임금을 받는 간병인, 청소부, 정원사, 웨이터 등의 직업군과 고임금을 받는 전문직과 관리직 수요는 늘어났지만, 중간 임금을 받는 생산직 노동자와 판매원 등은 줄어들게 되었다. 고임금 고숙련 일자리는 대체로 독창성과 판단력을 요구하는 틀에 박히지 않은 업무라 쉽게 기계로 대체되지 않으며, 저임금 일자리는 대개 손기술이 필요해 자동화가 어렵거나 자동화로 대체하는 비용이 더 크기 때문에 수요가 계속 존재하는 것이다. 문제는 중간층이라 볼 수 있는 생산직과 사무직 노동자의 일자리로 상당 부분 기계로 교체된다. 우리가 알고 있는 현실은 대체로 여기까지이다.

그렇다면 인공 지능 시대에는 무엇이 달라질까?

 

최초의 인공 지능은 인간의 뇌를 본떠 기계를 구축하고자 하였고 두뇌의 실제 구조를 그대로 복제해 인공신경망을 만들고자 했지만 실패하고 만다. 최근 주목받는 인공 지능은 과거와는 개념이 좀 다르다. 인간이 지능적으로 수행하는 과제들을 전혀 다른 접근 방법으로 완수한다. 인간 두뇌의 작동원리와는 무관한 컴퓨터 연산 기능을 통해 인간처럼 생각하진 않지만, 인간이 생각한 것과 다름없는 결과물을 창출해낸다. 인공 지능이 출시되면 사라질 직업의 순위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직업들이 아예 사라지거나 한 번에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인공 지능은 개별적인 좁은 영역의 업무를 아주 강력하게 수행할 수 있도록 설계된다. 변호사의 경우 고객 상담과 법정 변론, 사례 찾기, 계약서 검토 등이 주요 업무라면 계약서 검토는 인공 지능에 맡기고 다른 업무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 흔한 오해와는 달리 인공 지능은 직업 자체가 아닌 업무를 대체하는 것이다.

그동안 틀에 박히지 않는 업무는 기계의 습격에도 괜찮았다. 이는 암묵적 지식, 즉 인간이 쉽게 설명하지 못하는 지식을 기초로 한 일인데 명확한 설명이 어렵다 보니 자동화 분야에서 비켜나 있었다. 피부과 전문의가 피부 반점과 암을 구별해 내듯 경험과 지식이 충분해야 가능한 전문적 영역이 그러하다. 전문성도 경험도 심지어 감도 없는 인공 지능은 그러나 수십만 개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유사성을 찾아내어 인간과 같은 결과를 보여준다. 흔히 인공 지능은 창의적 판단을 수행할 수 없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인간과는 전혀 다른 수행 방식으로, 갑작스러운 혁명이 아니라 진화처럼 서서히 꾸준하게 인간의 일자리를 대체할 것으로 보인다. 그 속도는 나라마다 다르고 인건비 수준과 도입 비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또 다른 요인은 인공 지능의 적용 대상이다. 미국인 대다수는 알고리즘을 이용해 가석방을 결정하거나 입사지원서를 선별하고, 소비자 데이터를 바탕으로 재무 점수를 매기는 데 반대한다. 영국에서 구글의 딥마인드가 병원과 손잡고 환자 160만 명의 기록에 접근하는 계약을 맺자 국민은 불안해한다. 한편 중국은 2030년까지 AI 선도주자가 되겠다며 나서고 있으며 러시아도 같은 취지로 말한다. 중국의 인건비가 많이 오르자 시진핑은 로봇 혁명을 주문하고 있는데 중국 시민들은 저항할 꿈도 못 꿀 것이고 만일 그렇더라도 수용될 것 같지는 않다. 저자는 인공 지능 시대가 도래하면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일자리가 신기술로 대체되기는 해도 새로운 일자리 창출은 어려울 것으로 예측한다. 즉, 대체하는 힘이 보완하는 힘을 압도하여 영원히 이런 흐름으로 진행될 것이라 말한다.

 

몇십 년 동안 거의 세계 모든 지역에서 소득 불평등이 커졌지만, 속도는 달랐다. 발전 수준이 비슷한 국가들 사이에서도 불평등 수준이 무척 다르게 나타난다는 사실은 불평등을 형성하는 데 국가 정책과 제도가 무척 중요하다는 점을 뚜렷이 드러낸다. 그러므로 소득 불평등은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다. 

 

기술의 인간 업무 잠식에도 불구하고 인간 노동의 수요가 증가했던 현상은 이렇게 변모된다. 첫 번째, 기계가 사람을 밀어내자 사람은 자동화되지 않는 분야에 집중함으로써 생산성이 더 높아졌던 생산성 효과는 인간 노동자가 기계보다 더 나은 조건일 때만 가능한 이야기다. 오로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의 범위는 인공 지능에 의해 계속 잠식되고 있다. 두 번째, 경제 파이가 더 커지고 소득이 높아져 노동 수요가 커진다는 파이 확대 효과는 소득 증가가 상품 수요로 이어지더라도 상품을 꼭 노동으로만 만들어야 하는 건 아니므로 반드시 노동 수요 확대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세 번째 파이 탈바꿈 효과는 미미한 것으로 나타났다. 파이는 농업에서 제조업으로, 다시 제조업에서 서비스업으로 바뀌어왔지만, 앞으로는 우리가 아직 예상하지 못하는 새로운 산업 시대가 열릴 것이다. 100년 전 농부들이 의료, 금융, IT, 여가 분야 산업에서 이렇게 많은 노동자를 고용하리라 상상이나 했겠는가?

하지만 지금 한창 주목받는 신기술은 사람이 거의 필요 없다. 2006년 유튜브가 2조 원에 팔릴 당시 임직원은 고작 16명이었고 2012년 페이스북이 인스타그램을 1조 원에 매입했을 당시 임직원은 겨우 13명이었다. 신산업의 고용 창출 효과는 기껏해야 0.5%뿐이다. 저자는 이처럼 일이 서서히 줄어들지만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다고 말한다. 우리가 기술의 단기 영향은 과대평가하면서 장기 영향은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음을 경고하면서, 인간의 노동을 찾는 수요가 한순간에 무너지리라는 두려움이 팽배해 있음을 지적한다. 한 가지 분명한 기정사실은 당분간 인간이 맡을 일은 충분한 편이지만, 앞으로 수십 년간 장기적으로는 노동 수요가 충분치 않으리라는 점이다.

※ 오늘날 어떤 사람들에게 일이 삶의 의미를 얻는 원천인 까닭은, 일 자체가 특별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인생 대부분을 일에 쏟아붓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가 실제로 하는 일에서만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만약 인생을 마음껏 다르게 보낼 수 있다면, 우리는 다른 곳에서 삶의 의미를 찾을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일의 본질과 삶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일은 삶을 지탱할 수입을 벌기 위한 수단이기도 하지만, 우리에게 원대한 목적을 제공하고 삶의 체계와 방향을 제시하기도 한다. 현존 수렵 채집인과 문명사회 남성의 하루 평균 노동 시간을 비교해 본 결과 이들의 노동량이 놀랍도록 적었다고 한다. 이는 곧 인간은 삶에서 노동으로 정의되지 않는 성취감을 충분히 느낄 줄 안다는 의미이다. 일은 오히려 사람들에게 비참함을 안겨주었다. 산업혁명 시대에 미친 듯이 일하던 공장 노동자들은 깊은 성취감을 느꼈을까? 야근과 휴일 근무를 하면서 진정한 성취감을 느낄 직장인이 얼마나 될까? 이제는 일이 삶의 의미라는 생각에서 벗어날 때가 되었다. 실제 인류의 지적 수준을 한층 도약시킨 것은 일하지 않고 마음껏 예술 과학 문화 철학을 틈틈이 익힌 사람들이었다. 일을 통해 목적의식을 찾는 것보다 여가를 이용해 성공한 삶을 사는 법을 배워야 하는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 저자는 그래서 이러한 조건에 부합하는 교육이 가능해야 하고, 조건적 기본소득을 제공하고 자본을 분배하며 노동을 지원하는 큰 정부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내가 주장하는 큰 정부는 의미가 조금 다르다. 계획경제주의자들이 시도했다가 실패한 대로 정부를 이용해 파이의 크기를 키우자는 것이 아니라, 정부를 이용해 모든 사람이 파이를 나눠 갖도록 보장하자는 것이다. 달리 말해 큰 정부가 맡을 역할은 생산이 아니라 분배다. 

 

결론적으로 산업혁명 이후 노동의 시대를 지나온 덕분에 향후 100년 동안 어느 때보다 더 부유해지는 대신 우리는 세 가지를 고민해야 한다고 저자는 힘주어 말한다.

 

첫째, 경제적 번영을 사회의 모든 구성원과 나누어 불평등을 해소해야 하고

둘째, 이런 번영을 불러온 기술을 통제할 수 있는 정치적 힘을 결정해야 하며

셋째, 이런 번영 덕분에 노동 없이도 그럭저럭 살아가는 데 그치지 않고 잘 살아갈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이들은 물론 쉽지도 않거니와 해결되기도 어려운 문제이지만, 지금 세대와 앞으로 살아갈 모두에게 주어진 피할 수 없는 과제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로봇과 AI가 우리 일을 떠맡을까 불안하고, 소득 불평등 심화가 우려되고, 아이들의 장래 진로가 걱정스럽고, 교육 시스템의 현재와 미래가 미덥지 않은 독자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으로 추천한다.

 

[골프앤포스트=유선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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