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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레저

[유선종 엣지리뷰13] 나를 지키며 일하는 법

학력 사회보다 경력 사회로 나아가야

 

평생 직장에서 평생 직업 시대로

 

우리는 지난 1997년 말의 외환위기 사태를 겪으면서, 한 번 입사하면 그곳에서 정년퇴직하는 평생직장보다는 평생직업의 필요성을 절감하였다. 안정적인 생계수단에 안주하며 삶을 만들어 나가는 방식에 근본적인 변동이 생긴 것이다.

 

변화하는 주변 여건에 따라 움직이지 않으면 안 된다는 크나큰 교훈을 얻었다.

 

매일 아침마다 오늘도 무사히 퇴근을 주문하며 나서는 직장의 개념부터 흔들린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 아침 일어나 등교하기가 참 쉽지 않다. '학교가기 싫어요' 라고 말하면 엄마에게 혼나는 건 학생이나 교사나 피차일반이다.

 

저자는 일이란 사회의 일원으로 이 세상에 존재하기 위한 입장권이라고 말한다.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꼭 구해야 하며,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니 최소한 이 입장권만은 꼭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한다. 그런데 우리는 이렇게 중요한 입장권을 획득하는 단계부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셈이다.

 

공정하지 못한 경쟁과 공평하지 못한 평가를 시작으로 입장권을 손에 넣지 못하는 현상을 겪고 있다. 저자의 말이 논리적이고 설득력을 지닐수록 우리 학교에 미치는 반향은 더욱 더 파괴적으로 느껴진다. 모든 학생들이 대학 진학에 필요한 입장권을 공평하게 마련할 수 없다.

 

저자는 일본 역시 일하기를 원하는데도 취업을 못하는 현 상황에 커다란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우리도 역시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청년 실업률은 높아만 가는데 그들의 높아진 눈이 문제인지 아니면 높아진 취업 스펙이나 문턱이 문제인지 사회가 지혜를 모아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인문계 고등학교를 나와 자격증이나 기술도 없이 취업문제에 맞닥뜨려야 하는 처지가 가장 애처롭다. 이들에게 학교생활기록부의 종합의견란은 곧 교사의 고졸사원 취업 추천서일 수 있음을 모르고 있을 뿐이다.

 

이제는 개인 경력 모델 시대

 

학력 사회 모델 대신 뜨고 있는 ‘개인 경력 모델’.

내가 모든 일을 스스로 생각하고, 주체적으로 책임지며, 나의 활동을 조정하고 배치할 수 있으며, 모든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하고, 또 변화된 환경에 맞춰 즉각적으로 내 안의 프로그래밍을 바꿔 행동하기를 게을리 하지 않는 인재를 지금 대학에서는 요구하는 추세라고 말한다.

 

대학별 등록금 액수가 오르고 있는 자료는 보았어도 고등학교에만 있어봐서 그런지 대학생들의 이러한 멀티인재 육성의 성과는 체감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대학 진학 자체가 큰 일이 되어버린 우리 학생들은 꿈을 가지지는 못하고 수업 중에 자면서 꿈을 꾸기만 하고 있다. 그나마 꿈을 꾸기라도 하면 다행이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으니 이것저것 요구하지 말아달라는 무언의 외침과 격렬한 몸짓으로 오늘도 책상위에 엎어진다. 영어 듣기평가가 영어 자장가로 들리는 모양이다. 코까지 골며 아주 숙면을 취해 주신다. 그러다 밥 먹을 시간이면 귀신같이 알아채고 득달같이 식당으로 내달린다. 자고 먹고 노는데 이만한 식도락이 없고 이만한 지상낙원이 없다.

 

학이불사즉망(學而不思則罔)1)

 

저자는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얻는 것이 없다'는 논어 말씀을 인용한다. 책을 읽되 저자의 생각을 정리하여 자신의 생각으로 소화시키는 과정의 중요성을 일깨워준다. 아이들은 외국어인 영어를 그것도 교재도 없이 맨 몸으로 앉아 필기고 뭐고 두 팔은 축 늘어뜨린 채 다 듣고 이해하는 신공을 펼쳐 보인다. 아무리 봐도 이만큼 영악하고 똑똑한 학생들은 이 지구상에 대한민국에만 존재하지 싶다. 물론 공부 안하고도 실망하지 말라는 뜻에서 시험문제 수준을 고려해주는 편이긴 하지만 보면 볼수록 신통방통할 따름이다.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하다보면 정치만큼 좋은 소재가 없다. 정치 동향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폭넓은 사회관계를 맺는 것이 곧 각성과 깨달음으로 이어짐을 아이들은 벌써 알고 있었다. 굳이 대학까지 가지 않아도 대학교육을 접하지 않아도 정치는 곧 생활임을 피부로 느껴 배우는 영특한 아이들이다. 다만 대학에서 공부의 길을 잘 찾아가고 대학을 졸업한 후에도 새로운 배움의 계기, 각성과 깨달음의 계기를 얻는데 도움이 될 독서와 인문지식이 현재로서는 많이 부족할 따름이다. 부족하면 좀 어떠한가 당장의 생활에 뭐가 그리 큰 문제가 된다고. 머리아프게 책 들여다 볼 시간은 없어도 햄버거집 알바나 피씨방에서 롤이나 오버와치에 기꺼이 투자할 시간이 있을 뿐이다. 심지어 이들은 점심식사를 마치고 삼삼오오 건물 옥상에 모여 불로장생의 지름길이라는 식후 연초를 실천에 옮기는 근면성실함 마저도 지녔다.

 

그렇다. 아이들은 이미 자신을 참 잘도 지키며 학교 환경에 훌륭히 적응하고 있던 것이었다. 오히려 졸업 후 학교로 찾아와 함께 소주 한 잔 기울일 날이 기다려진다.

 

[골프앤포스트=유선종 칼럼니스트]

 

1) 학이불사즉망(學而不思則罔) 사이불학즉태(思而不學則殆) 논어 위정편에 나오는 말이다. 학이불사즉망은 '배우기만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얻을 수 없다'는 뜻이며, 사이불학즉태는 '생각하기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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