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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레저

[유선종 엣지리뷰 43] 로르샤흐

표준화 된 잉크반점 심리검사를 만든 선구자

 

이 책은 어느 실존 인물의 전기이자 역사소설이다.

 

전반부는 표준화된 잉크 얼룩을 정신분석의 목적으로 활용하는 '로르샤흐 시험'을 개발한 스위스 정신과 의사 헤르만 로르샤흐의 전기다. 그의 시험이 세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할 무렵인 1922년 그는 안타깝게도 서른일곱 젊은 나이에 요절하고 말았다. 후반부는 그의 사후 로르샤흐 시험이 심리학 분야에 미친 역사를 다룬 것으로, 그 유효성은 여전히 시험대에 올라 개선을 거듭하고 있다.

 

이 시험의 대중적 인기는 그 후 몇 년 동안 다양한 분야로 파급되었으며, 이 시험의 옹호자들과 비판자들 사이에 의견의 양극화를 초래하기도 하였다.

 

한 세기 가까이 지난 오늘날의 시각에서 보아도 헤르만 로르샤흐는 상당한 매력을 지닌 인물로 보인다. 사실 영화배우 브래드 피트를 많이 닮기는 했다.  20세기 초반의 스위스 정신과 의사라면 구태의연하고 이상적인 생각으로 가득한 외골수 성격일 것이라 짐작해서였을까? 그는 첫눈에 상대방을 편안하게 해 주는 인물로 작품 곳곳에서 묘사된다. 그는 특히 여성에게 고등교육의 기회를 제한하던 시대에도 여성의 권리를 옹호할 줄 아는 사람이었으며, 러시아 출신의 스위스 의사와 결혼함으로써 지적인 여성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몸소 실천하였다. 이외에도 그에 대해 알려진 사실과 일화로 짐작건대 그는 당시에도 상당히 진보적 성향의 인물임을 확신할 수 있다.

 

여기서 잠시 로르샤흐 검사에 관해 알아본다.

 

이 검사는 종이 위에 잉크를 떨어뜨리고, 그것을 접었다 펴서 좌우 대칭으로 만든 그림(로르샤흐 카드)이 사용된다. 데칼코마니 기법으로 만들어진 이 그림은 지금도 로르샤흐의 작품이 그대로 사용된다. 각각 5장의 무채색과 유채색 카드를 사용하며 크기는 약 17cm×24cm이다. 검사자는 피험자에게 카드를 1장씩 보여주는데 피험자는 카드의 잉크 반점이 무엇으로 보이는지 자유롭게 응답하고(자유 반응 단계), 검사자는 어디가 어떻게 보이는지 등을 질문하고 청취한다.(질의 단계) 이 과정에서 반응 시간, 반응 내용(무엇을 보았는지), 반응 영역(어디서 그렇게 보았는지), 결정 원인(어떤 특징에서 봤는지)이 기록된다.

 

로르샤흐 잉크 반점 검사는 피험자가 그림에 어떻게 반응하고 어떻게 분석해야 할지 알 수 없어 답변을 고의로 조작하는 반응 왜곡이 발생하기 어려워 무의식적인 심리 분석이 가능하다. 1921년 개발된 이후 오랜 세월에 걸쳐 널리 사용되고 있으며, 반응 및 분석 데이터베이스 구축을 위한 통계적인 평가도 어느 정도 허용되고 있다. 그러나 다른 표준화 검사와 비교하여 타당성・신뢰성이 낮고, 응답 결과의 분석에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며 이를 포함하여 오랜 시간이 걸려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점 등을 들어 그 유용성에 의문이 제기되기도 한다.

 

헤르만 로르샤흐는 그가 개발한 테스트의 성격에서 알 수 있듯 예술가의 재능을 보였다. 잉크 반점이라는 말로 그의 테스트에 사용된 그래픽의 특성을 모두 설명하기는 사실 어렵다. 그가 준비한 반점은 최대한 모호하고 상반되도록 치밀하게 설계된 작품이다.

 

10개의 공식 잉크 반점 검사지는 각각 개별적인 카드에 인쇄되어 있으며, 각 반점은 거의 완벽한 좌우 대칭을 이룬다. 다섯 장은 검은색, 두 장은 검은색과 빨간색, 세 장은 흰색 바탕에 다색 잉크로 인쇄된다. 이 표준화된 열 장의 반점은 첫 개발 이후 지금까지 변함없이 쓰이고 있으며, 이후 이루어진 모든 변화와 개선은 채점 방식과 해석의 영역이었다.

로르샤흐가 중년의 전성기를 앞두고 사망한 사실은 매우 안타깝다. 그의 사후에도 그가 남긴 잉크 반점 검사는 심리 검사 분야의 대세로 자리 잡기 시작했으므로 만일 그가 더 오래 살았더라면 상황이 어떻게 바뀌었을지 자못 궁금했다. 그가 그래픽 도형에 대한 다른 반응을 발견한 후 주로 조현병 진단을 위한 도구로 자신의 테스트를 개발했기 때문이다. 그는 인성검사로서 몇 가지 실험을 진행했지만, 적용하는 방식에는 조심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결국, 이 시험을 일반적인 인성검사로 적용한 것은 다른 사람들의 몫이었다.

이 책의 후반부는 다양한 심리학 학파들이 우열을 다투는 양상을 보이기 때문에 결국 20세기 심리학의 역사서가 되고 만다. 이 책에서 묘사된 바와 같이, 다양한 성격 유형들이 잉크 반점 검사에서 서로 다른 인식의 패턴을 보여주어 로르샤흐 테스트의 장점으로 작용한다. 로르샤흐의 문제는 채점으로부터 의미 있는 결론을 도출하는 데에서 비롯된다. 시험의 정확성을 높이기 위한 노력은 결과를 얻기 위한 지루한 절차로 귀결되었다.

점수를 잘못 매겨 이혼 양육권 싸움에서 부적절한 결정을 내리게 된 사례도 등장한다. 하지만 이와 비슷한 실수는 다른 심리 검사에서도 흔히 발견될 수 있다. 구두 또는 필기시험을 사용하기 어렵게 만드는 문화와 언어의 차이가 있는 상황이라면 로르샤흐 검사가 유리할 수 있다는 점을 이해할 수 있다.

 

로르샤흐는 심리학의 세계적 석학인 융, 프로이트, 블로우어러 등의 영향을 받아 지속적인 치료 결과를 끌어내는 최적의 진단 테스트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의 병원에서 무려 320명 환자의 정신건강을 진료하면서 자신의 시험 결과를 평가하고 발표하려 노력했다. 열심히 일하는 그는 매우 가정적인 남성으로 처음에는 동생, 누이, 계모, 그다음에는 아내와 두 아이를 차례로 부양했다. 그는 또한 아이들의 대부분 장난감과 아파트 가구를 만들어내던 뛰어난 목공이기도 했다.

 

그가 창안한 진단 테스트는 역설적으로 그의 죽음 이후 인기 있는 실험이 되어 일본, 러시아, 영국, 호주에 도입되었고 그 가운데 가장 열심인 국가는 미국이었다. 이 잉크 반점은 신경증이나 조현병 환자뿐만 아니라 소총수, 아프리카 선교사, 취업준비생, 아동, 교사, 비행 청소년 등을 평가하는 데 전 세계적으로 사용되었는데,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누구에게나 같은 기준을 적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도입 당시 열렬한 시험 숭배자 미국은 거의 전 분야에서 인성 숭배로 진화하는 단계에 있었고 사람들은 이 시험과 그 결과를 통해 방향을 모색했다. 이때는 광고 전성기의 초기였고 주관적인 반응과 투영으로 로르샤흐 시험에 완벽한 환경이었다. 또한, 시험 결과를 수량화할 수 있다는 장점을 바탕으로 인류학자를 비롯한 최신 과학자들이 다양한 문화를 접할 기회가 되기도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로르샤흐는 대중문화에 영감을 주었다. 영화와 응접실 게임에서부터 잡지와 만화의 보급에 이르기까지 잉크 반점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창의성의 상징이었다.

 

이 책은 사회적 관습에 대한 적용과 효과뿐만 아니라 수십 년 동안 시행된 원래의 시험에 대한 수정 사항들에 초점을 맞추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사실은 각 장의 마지막 다섯 페이지 정도의 요약을 읽는 것만으로도 중요사항을 알기에 충분하다. 전문작가인 저자는 헤르만 로르샤흐를 전 세계에 소개하는 놀라운 일을 해냈다. 로르샤흐의 삶을 인간적으로 접근하는 동시에 많은 시간을 들여 테스트 개발의 의도를 진정으로 이해하려 애썼다는 영감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 책에는 로르샤흐가 사망하고 여러 해 지나 그의 아내가 사별한 남편에게 썼던 감동적인 헌사를 담은 부록이 실려 있다. 부록은 또한 어떻게 저자가 로르샤흐의 족적이 담긴 문서를 얻을 수 있었는지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포함하고 있다.

 

이 책의 만만치 않은 분량과 자칫 지루할 수 있는 배경 설명에도 불구하고 꼼꼼한 고증과 설명의 소설 형식으로 잘 구성된 점을 활용한다면 심리학도, 상담사, 또는 심리학과 문화 인류학에 관심 있는 독자들에게는 매우 흥미로운 읽을거리임이 틀림없다. 일독을 권해드린다.

 

[골프앤포스트=유선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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