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6 (화)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문화/레저

[유선종 엣지리뷰18] 과학 같은 소리 하네

과학의 탈을 쓴 거짓말에 속지 않는 지침서

 

예전에도 그랬겠지만 요즘 들어 더더욱 존경하기 어려워진 직업 가운데 하나가 바로 정치인이 아닐까 싶다. 수년 전 타계한 정의당 노회찬 의원의 경우는 살아생전 죽어라 욕을 해대던 비정상적인 언론매체들과는 대조적으로 조문객들이 줄을 서서 분향소를 찾기도 하였지만, 대체로 정치인들은 자신의 권력욕을 채우기 위해 드러난 진실이나 애도해 마땅한 일마저도 정치적으로 교묘하게 이용할 줄 아는 부류로 이해되어왔다.

 

저자가 미국인이고 이 책의 배경이 미국 사회인 점을 고려하면 민주주의 제도를 우리보다는 먼저 시작했던 선진국이니까 그래도 여러 면에서 조금은 낫지 않을까 싶었으나, 공공의 이익과 다수의 행복을 바라고 실천에 옮겨 국민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는 정치인이 그리 많지 않은 건 미국이나 우리나 비슷한 것 같다.

책 서두에 인용된 세르반테스의 말처럼 ‘과학은 그 자체로 거짓말을 하는 법이 없다. 거짓말을 하는 것은 과학을 빙자한 인간들이다.’ 그렇다면 우리 대중에게는 과학을 앞세운 현혹적인 언사로 국민을 섬기지 않는 정치인들을 골라 낼 줄 아는 안목이 필요하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그들의 거짓 술수와 그로 인해 저지르는 우리의 오판이 결국은 우리 자신의 목을 조이는 결과로 돌아 올 테니 말이다. 

이런 점에서 저자는 우리에게 썩은 사과 골라내는 법, 즉 정치인들이 펼치는 12진법에 대응하여 속아 넘어가지 않는 방법을 친절 자상하게도 아래와 같이 알려주고 있다. 참고로 괄호 안의 영문 용어는 원서의 목록에서 가져왔다.

 

1. 지나친 단순화 (the oversimplification) : 

종종 정치인들은 섣불리 말할 수 없는 복잡 미묘한 주제들을 강하게 단정적으로 주장하며, 연설에서의 박수 또는 법안에 대한 지지를 얻어내기 위해 복잡한 과학 문제를 간결하고 인상적으로 압축해버려 사람들에게 과학에 대한 잘못된 인상을 심어준다. 어떤 과학적 주장 뒤에 있는 증거를 요구하고 파고들기 시작하면 정치인의 발언이 과학과 어긋남을 자주 발견하게 되는데, 과학 관련 쟁점 밑에 깔린 정책적 입장을 살펴보면 이런 유형의 오류를 발견해 낼 수 있다. 그럴싸하게 들릴지는 몰라도 완전한 진실을 말하지는 않으므로 과학을 단순하게 포장한 얘기에 현혹돼서는 안 된다는 게 포인트.

2. 체리 피킹 (the cherry-pick) : 

자기에게 불리한 사례나 자료를 숨기고 유리한 자료를 보여주며 자신의 견해 또는 입장을 지켜내려는 편향적 태도를 가리키며, 과수원에서 체리와 같은 과일을 수확하는 과수업자들의 행태에서 유래했다. 과수업자들은 일반적으로 잘 익고 빛깔 좋은 과일 위주로 채집해 유통하고, 품질이 떨어지는 과일들은 버리거나 다른 용도로 사용하는데 이는 자신이 생산하는 과일에 대한 나쁜 평판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수확한 과일만 보게 되는 도매상이나 소비자들은 과수원의 과일이 다 좋을 것이라는 잘못된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즉, 채집/유통되는 과일이 과수원의 과일 중 일부 표본에 불과한데, 그러한 표본을 전체 표본으로 여기고 잘못된 환상을 갖게 된다. 

미국 제42대 대통령인 빌 클린턴(Bill Clinton)은 재임(1993~2001년) 기간에 적어도 경제정책 성적만큼은 우수했다고 인정받는다. 특히 재임 초기 약 15%에 달하던 빈곤율(poverty rate)은 집권 4년 차인 1996년 말까지 13.7%로 미약한 개선 움직임만 있었지만, 그 후 급격하게 개선되어 퇴임 즈음인 2000년 말에는 3.4%까지 하락했다. 오히려 그다음 부시(2001~2009년 재임)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빈곤율이 다시 급증하기 시작했다. 부시 집권 4년차인 2004년 말에는 클린턴 행정부의 집권 4년차 성적과 유사한 12.7%로 높아졌는데, 이는 누가 보더라도 부시 행정부의 빈곤퇴치정책 성적이 볼품없었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2005년 미국 폭스뉴스(Fox News) 채널의 인기 프로그램인 O’Reilly Factor의 진행자 빌 오라일리(Bill O’Reilly)는 방송 중 부시 행정부의 빈곤퇴치정책을 의도적으로 치켜세우고자 두 행정부 재임 중간 시점 빈곤율인 13.7%(클린턴 행정부)와 12.7%(부시 행정부)만을 인용해 비교했다. 부시 행정부에 유리한 정보만 취하고 불리한 증거는 언급조차 하지 않은 전형적인 체리피킹이었다.

3. 아첨과 깍아 내리기 (the butter-up and undercut) : 

관객들이 무대 한편의 화려한 구경거리에 시선을 뺏기는 동안 마술사가 다른 쪽에 있는 코끼리를 사라지게 만드는 속임수로, 정치인들은 국민에게 질타받을 것 같은 발언을 할 때 이 수법을 사용한다. 미 우주항공국 NASA를 첨단 과학기관이라고 칭찬을 마구 쏟아부으며 치켜세우다가 뒤에서는 기후변화 연구비를 삭감하려던 일화처럼, 정부 예산에서 큰 주목을 받지 못하는 기초과학 연구 분야를 두고 과학이 중요하다고 잔뜩 띄워놓고는 연구 지원금을 끊게 만들면 그 손해는 결국 국민의 몫이 된다. 이 전략은 12진법 가운데 가장 악질적이며 의도된 행동이다. 긍정적인 여론과 부정적인 행동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정치인들은 고의로 이 전략을 사용한다. 마치 마술사처럼 화려한 쇼맨십으로 관객의 시선을 돌려놓고 교활한 음모로 딴짓을 하는 추잡한 술책이다. 

4. 악마 만들기 (the demonizer) : 

검역 상태가 입증되지 않은 이민자 수가 늘어나면 자국민의 전염병 발병율이 올라간다는 이유로 이민을 반대하던 수법으로, 정치인들의 손쉬운 책략이자 질병과 관련된 사안에 국한되어 있어 간파하기는 어렵지 않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는 과거 예멘 난민들의 제주도 입국 심사가 그 좋은 보기가 되고 있다. 특이한 것은 질병보다도 예멘인들의 종교적 정체성이 이슬람이기 때문에 발생 가능성이 있는 테러행위와 깊은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본다는 점. 

전국의 편의점 개수보다 교회가 더 많은 나라가 아직도 하늘 왕국(Kingdom of Heaven)이 못될 뿐 아니라 1~2%에 그치는 지극히 낮은 난민심사 통과율마저도 두려워한다는 게 더 신기할 따름. 이 악마 만들기 수법은 비단 정치인들뿐만 아니라 종교계에서도 애용한다. 신도 수도 줄고 인기도 예전 같지 않자 시들해진 신앙심을 고취하려는 듯 일부 개신교가 요즘은 LGBTQ를 대상으로 공격의 화살을 퍼붓는 양상이다. 소수 성애자나 이슬람 난민은 악마가 아니다. 악마는 정치인(여기서는 일부 종교인)들의 발언 속에 나 보란 듯 들어 있음이야. 천사인 나의 결백을 입증하려면 누군가를 악마로 만들어 주면 되는 법.

5. 블로거에게 떠넘기기 (the blame the blogger) : 

정치인들이 인터넷상의 헛소리를 아무런 제재 없이 떠들도록 내버려 두면 볼 수 있는 기법이다. 그들은 이미 공인이기 때문에 사회 전반에 미치는 영향력을 고려할 때 만일 물의를 일으킨다면 분명 일반인과는 다른 더 큰 책임을 물어야 한다. 마치 어느 정치인이 국민 정서에 반하는 말도 안 되는 비난의 목소리를 실컷 높인 다음, 문장의 주어가 없다며 책임을 회피하는 수법과도 많이 닮았다. 인터넷은 넓고 미꾸라지는 많다.

6. 조롱과 묵살 (the ridicule and dismiss) : 

복잡한 과학적 쟁점을 유치한 얘기로 둔갑시켜 사람들이 그저 고개를 저으며 웃게 만드는 수법으로, 이런 식으로 사람들이 해당 쟁점을 이해하지 못하게 막으면서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관철한다. 한국에서는 주요 정치인도 아닌 국회의원님 보좌관 따위들이 타계한 모 의원의 죽음을 애도한답시고 모여앉아 국수 먹방을 생중계하며 고인을 조롱하였다. 도리어 자신들과 자신들이 속한 정당을 묵살 당하게 하려는 엑스맨들이 아닐까 싶다.

7. 문자주의적 논리 (the literal nitpick) : 

nitpick은 "(이 잡듯이) 수색하다, (시시한 일을 가지고) 끙끙 앓다, (시시한 일을) 꼬치꼬치 캐다, ~의 흠을 잡다"는 뜻이다. nit은 이(louse) 등과 같은 기생충의 알, 서캐 등을 뜻한다. 옛날에는 사람들도 원숭이들처럼 서로 머리털 속을 헤집으면서 일일이 손으로 이나 서캐 등을 잡아주었다. 매우 사소한 일에 과도한 신경을 쓰는 것도 nitpicking이라고 한다. 넓은 관점으로 바라봐야 하는 사안을 어느 한 측면이나 엄격한 정의에 선택적으로 초점을 맞춘다

유치하게 들리지만, 정치인들은 편리할 때 이런 전략을 사용한다. 이 수법에 넘어가지 않으려면 논점의 구체적인 내용뿐만 아니라 단어 선택도 주의 깊게 들여다봐야 한다. 숙제해 오지 않은 미국 학생들이 선생님에게 질타당할 때 즐겨 쓰는 '우리 집 개가 내 숙제를 먹어치웠다' ‘My dog ate my homework.’ 와 많이 닮지 않았는가? 정치인이 한 특정 측면에만 지나치게 초점을 맞추는 것 같다면 이렇게 물어봐야 한다. 그럼 대체 개가 숙제를 먹도록 내버려 둔 건 누구란 말인가?

8. 공적 가로채기 (the credit snatch) : 

자신의 직권 하에 일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어떤 업적을 자기 공이라고 주장하는 수법으로 사실은 이전 행정부의 정책이나 이면의 어떤 메커니즘 덕분인 경우가 많지만 대부분 정치인은 성공 밑에 깔려있는 진짜 연원을 굳이 설명하지 않는다. 이 수법에 당하지 않으려면 상관관계는 인과관계와 동의어가 아니라는 진리를 명심해야 한다. 뭔가 좋아지거나 어떤 일이 일어날 때 특정 정치인이 재직 중이었다고 해서 반드시 그의 공이라고 할 수는 없다. 이 책략은 선거기간에 가장 흔히 사용되고 선거결과에 영향을 끼친다. 어떤 장기적인 사업결과를 자기 공이라 주장한다면 그 사업이 이루어진 과정을 조사해봐야 한다. 

1970년대 전 세계 평균 경제 성장률이 7~8%에 이르는 고도 성장기에 ‘잘살아보세’를 외치며 대통령직에 있었고 그에게 잘살게 된 평생의 빚을 졌다는 생각으로 살아가는 세대에게는 일어나기 어려운 일이기는 하다. 그들의 후손들이 그 잘살아보자는 운동의 대가로 만만찮은 사회적 부작용을 치르게 될 줄은 몰랐겠지만. 월남 파병 당시 미군에서 사병에게 지급하는 월급 500불에서 50불만 주고 나머지는 비자금으로 꿍쳐둔 사실이 밝혀진 것처럼,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왕 서방이 받는 경우다.

9. 확실한 불확실성 (the certain uncertainty) : 

과학에 절대적이고 완벽한 100퍼센트 증거란 없다는 점을 이용하여 어떤 문제에 행동을 취하는 것을 미루거나 반대하는 수법으로, 주로 기후변화와 관련된 분야에서 애용된다. 환자가 폐암 초기에 걸린 사실을 알려주면서 그러나 거기까지일 뿐 왜 암이 발병하였고 어떻게 치료할지 모르겠으니 손을 쓸 수 없다는, 암에 대해 전부 다 알지 못할 바에야 아무것도 모르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돌팔이 의사의 터무니없는 주장과 다르지 않다. 

기회주의적 정치인들이 자신들에게 편리한 때에만 이 카드를 꺼내 든다. 측정, 실험, 이론과 가설 등은 과학과 이해력의 절대적 한계 안에서 증명된 것들이므로 오차는 늘 있게 마련이고 이렇게 언제나 불확실하기 마련인 과학의 허점을 그들은 교묘하게 잘도 이용한다. 선의의 지적이 아니라 정치적 목적을 이루기 위한 연막작전일 뿐이다. 아무것도 하지 말고 그냥 계시면 된다는 소리를 이렇게나 어렵게 한다.

10. 철 지난 정보 들먹이기 (the blind eye to follow-up) : 

한참 전 유행이 지난 전두엽 절제술, 약간의 투자만으로 큰돈을 벌 수 있다고 떠벌린 인간게놈 프로젝트, 의혹투성이이나 밝혀진 진실은 없는 기후변화 게이트, 위해성 문제로 불안감을 조장했던 유전자 조작 제품 등 최근 과학 분야의 관심거리 가운데 일부 정설로 받아들여지는 부분만을 도입하여 자신의 인지도와 정치적 입지를 높이는 수법. 주로 5~6년쯤 살짝 철 지난 유해상품을 파는 영업사원 같은 수완을 발휘하는데 다분히 고의성을 보이는데 불구하고 의외로 잘 먹혀든다. 지나간 버스에 손 흔들어 봐야 손만 아프다.

11. 정보의 와전 (the lost in translation) : 

종류 불문하고 전문적 정보를 수동적으로 접하는 사람들은 통계와 수치에 휘둘리기 마련이다. 어떤 과학적 주장이 두세 다리 건너 전달되는 과정에서 진실은 행방불명되고 만다. 귓속말로 전달하기 게임을 보면 처음과 전혀 다른 말이 나오는 것과 같다. 이 정보는 정치인의 입을 거치는 도중 변질하여 고의적이거나 진짜 실수로 보이기도 한다. 결과적으로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펼치게 된다. 정치인들의 주장과 이야기를 ‘정화’해서 듣고 이해해야 한다니 이거야말로 공해가 아닐 수 없다. 개그맨보다 더 웃긴 정치인들 덕분에 종영한 개콘의 아무 말 대잔치 장르로 보면 된다.

12. 순수한 날조 (the straight-up fabrication) : 

사실관계도 따지지 않고 합리적이거나 이해 가능한 출처도 없이 ‘과학적인’ 주장을 하는 수법. 정확한 의도가 잘 파악되지 않으므로 거짓으로 단정 짓기 어렵다. 어쨌든 근거가 희박한 얘기를 뽑아와서 진실로 내세운다. 자신의 주장이 논리적 사실적 여부와 관계없이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고 믿고 밀어붙인다. 흔히 겪는 일 중에 논리적인 대화가 불가능해지면 흔히 나이를 따진다거나 고성과 폭력적인 언행으로 겁을 주어 대화를 무마시키려는 경우를 볼 수 있다. 성에 관한 쟁점에서는 국가를 막론하고 그 무지와 저열함이 비슷한 것 같은데 이 분야에서만큼은 미국에 지고 싶지 않은 한국 정치인들이 더 많은 것 같다. 하긴 간절히 원하면 우주의 기운이 도와준다고 믿고 있으니.

이상 12가지 수법을 살펴보았다. 이 책과 유사한 형식으로 한국판 ‘과학 같은 소리 하네’를 누군가가 책으로 펴내도 좋을 것 같다. 미국 정치인들의 경우보다 우리네 정치인들이 그 내용과 수법 면에서 절대로 뒤지지 않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골프앤포스트=유선종 칼럼니스트]

관련기사

60건의 관련기사 더보기

포토이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