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기사는 본사와 제휴한 조세금융신문과 동일하게 게재한다. 앨런의 인생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언급해야만 하는 사람이 있다. 올드 톰 모리스다. 올드 톰 모리스(1821~1908)는 1835년 14살 이른 나이에 세인트 앤드류스에 있는 앨런 공방에 수습생(도제)으로 들어가 4년간 캐디, 볼과 클럽 제작, 골프를 배웠고, 그 후 5년간 숙련공으로 일했으며, 그가 쫓겨나기 전까지는 포썸 경기의 골프 파트너로 같이 내기 시합도 나가고, 골프 코스도 만들면서 앨런의 중요한 순간을 같이 했다. 앨런은 올드 톰 모리스와 함께하는 동안 골프 시합을 통해 많은 돈을 벌었지만, 모리스의 도움으로 골프 코스도 설계하였다. 바로 [그림1]의 카누스티 골프 코스(Carnoustie, carnoustiegolflinks.com)다. 1842년에 카누스티 골프 링크스를 10홀 골프장으로 만들었고, 1867년에는 올드 톰 모리스 혼자서 18홀로 확장했다. 카누스티는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베스트 코스 중에 하나가 되었다. 이 당시 앨런이 카누스티 골프 코스를 만들면서 다른 골프 코스와 차별화 시킨 개념으로 만든 것이 더블 그린이다. 앨런은 골프 대중성을 높일 수 있도록 세인트 앤드
※본 기사는 본사와 제휴한 조세금융신문과 동일하게 게재한다. 앨런의 인생 1막이 볼 제작자로 유명세를 떨쳤다면, 그의 인생 2막은 골프로 세상을 지배하게 된다. 통상 챔피언 골퍼는 디 오픈 우승자에게 주어지는 명예로운 칭호다. 1860년 디 오픈이 생기기 전에 챔피언 골퍼라고 자타가 인정했던 골퍼가 앨런이다. 앨런은 생계를 위해서 돈 내기 골프, 캐디, 골프 볼 제작, 골프 클럽 제작, 골프 강습을 했으며, 당시 대부분의 프로들도 생계를 위해서 똑같은 일을 했다. 이러한 프로들 중에서 최초의 프로 골퍼라는 칭호를 받고 있는 사람 또한 앨런이다. 앨런을 골프 신이라고 말하는데, 그를 신의 위치까지 올린 이유가 바로 그가 한번도 돈 내기 시합에서 져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심지어 골프 타수를 조절하면서까지 내기 골프를 했다는 기록도 있다. 그가 28살이 되던 1843년 6월 윌리 던 시니어(Willie Dunn Sr., 1821-1878)와의 역사적인 시합 이후부터 챔피언 골퍼로 불리게 된다. 이 시합은 기록에 남아있는 최초의 골프 별들의 전쟁이었다. 1843년 머셀버러 출신이면서도 특이하게 잉글랜드의 블랙히쓰에서 1851년부터 1865년까지 활동했던 22살
※본 기사는 본사와 제휴한 조세금융신문과 동일하게 게재한다. 앨런 로버슨 이야기 챔피언 골퍼(Champion Golfer), 최초 프로골퍼(First Professional Golfer), 골프 볼(페더리 볼) 명인, 골프 클럽 제작자, 내기 골프에서 져본 적이 없는 골퍼, 캐디, 올드 톰 모리스의 스승, 세인트 앤드류스 올드 코스 최초로 80타를 깬 골퍼, 디 오픈 우승 기록이 없는 위대한 골퍼, 세인트 앤드류스 골프 클럽의 캡틴, 이 모든 수식어는 오로지 한 사람을 가리킨다. 바로, 앨런 로버슨(Allan Robertson, 이하 ‘앨런’이라 칭함)이다. 현대 골프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앨런을 설명해야 한다. 그는 1815년 9월 15일 스코틀랜드에 있는 파이트, 세인트앤드류스에서 데이비드 로버슨(David Robertson)과 앤 벨(Ann Bell)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1800년대 초반 세인트 앤드류스에서 시니어 캐디이자 캡틴으로 활동했으며, 페더리 볼 제작자이자 최고의 플레이어였다. 그 당시 스코틀랜드에서 골프 관련으로 이름을 떨치던 집안으로는 로버슨(Robertson), 굴레이(Gourlay), 모리스(Morris), 앤더슨(
※본 기사는 본사와 제휴한 조세금융신문과 동일하게 게재한다. (골프앤포스트=김대중 골프앤파트너 대표) 기록으로 본다면, 골프의 기원은 스코틀랜드이지만 캐디라는 말의 어원은 프랑스다. 물론 그 중심에는 스코틀랜드가 있다. 프랑스어 ‘르 카데(Le Cadet)’는 소년 또는 한 집안의 막내라는 뜻이다. 이 단어가 프랑스에서 스코틀랜드로 넘어가면서 영어에 ‘커뎃(Cadet)’이라는 단어가 처음 기록으로 나타난 때가 1610년이며, 1634년부터 짧게 ‘캐디(Caddie 또는 Cadie)로 기록된다. 참고로, 영어 ‘Cadet’은 경찰이나 군대의 간부(사관) 후보생이다. ‘카데’라는 단어가 프랑스에서 스코틀랜드로 넘어오는 계기는 매리 스튜어트(Mary Stuart, 1542~1587)라는 최초의 여성 골퍼 때문이다. [그림 1]은 1905년에 그려진 그림으로 세인트 앤드류스 링크스(St. Andrews Links)에서 골프를 치고 있는 매리 여왕의 모습이다. 그림에서 보듯이 이 당시에는 골프 코스에 대한 개념이 없고 골프를 즐기는 장소만이 있을 뿐이다. [그림 1]에서 어드레스 중인 매리 여왕 옆에 ‘카데들’이 골프클럽을 들고서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 당시
[골프앤포스트=최주현 기자] 한국대중골프장협회는 17일 전북 군산 컨트리클럽 박현규 회장이 체육 발전에 기여한 유공자에게 수여하는 대한민국 체육포장을 수상했다고 밝혔다. 박현규 회장은 한국대중골프장협회 2대 회장을 역임했다. 박현규 회장은 2003년 국내 최대 대중 골프장인 군산 컨트리클럽을 건설해 한국 골프 발전에 큰 업적을 남겼다. 폐염전 부지를 골프장으로 개발해 국토의 효율적 활용 사례를 남겼고 자연을 훼손하지 않는 골프장 건설 공법의 개발, 연인원 12여만 명 고용, 골프장 코스 관리 장비 및 부품 국산화 주도, 그리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주니어 골프 선수 후원 등을 주요 업적으로 꼽는다.
[골프앤포스트=김종태 기자] 한국 골프산업 대중화를 이끌어온 골프계 원로 이동준 GA코리아 회장(82)이 18일 별세했다. 1940년 인천 강화 출신인 고인은 경기도 용인 골드CC, 코리아CC를 비롯해 미국 일본 등 해외에도 골프장을 운영하며 한국 골프산업 발전과 관광화에 힘을 기울였다. GA리조트 골프 아카데미를 통해 골프 유망주 육성과 후원, 발굴로 한국골프 중흥을 주도했다. 대한골프협회 부회장을 오랜기간 역임하기도 했다. 북한 결핵 어린이 돕기와 북한 어린이 분유 보내기 운동 등 사회 공헌 활동에도 앞장섰다. 최근엔 수해를 입은 이웃들을 위해 수억원을 기부했다. 또 수년째 용인시에 이웃돕기성금 및 장학기금 등을 쾌척해 왔다. 2007년 은탑 산업 훈장, 2009년 한국중재학회 국제거래신용대상 등을 받았다. 유족으로 아들 이용성 GA코리아 사장 등이 있다. 빈소는 신촌세브란스 병원, 발인은 21일 8시. (02)2227-7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