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21~22일,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KINTEX)에서 열린 글로벌 기술 컨퍼런스 ‘넥서스2140(Nexus2140)’이 성황리에 마무리되었다. 이번 행사는 인공지능(AI), Web3, 블록체인, 이커머스 등 첨단 기술 전반을 아우르며 국내외 기술 업계 관계자들의 뜨거운 관심을 모았다. 컨퍼런스 첫날에는 기술 행사와 함께 비트코인 문화를 접목한 이색적인 특별 이벤트도 펼쳐졌다. 특히 주목받은 프로그램은 '2025 코리아 넥서스2140 비트코인 여신의 밤'이라는 주제로 진행된 ‘미스비트코인(Miss Bitcoin) 모델대회’다. 이 행사는 전통적인 기술 콘퍼런스를 넘어, 블록체인 문화를 새로운 방식으로 풀어내려는 시도의 일환으로 기획되었다. 이 자리에는 미스비트코인 콘테스트(Ms Bitcoin Miss Bitcoin Contest)의 공동 창립자이자 국제 블록체인 문화 리더로 주목받고 있는 양안치(梁安琪, Angel Leong) 회장이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양 회장은 세계중국기업가지도자클럽(World Chinese Entrepreneurs Leaders Club) 상임위원회 회장이자, International Capital Goddess Compet
예술을 기반으로 한 글로벌 브랜드 리더십의 모범 사례, 최형준 대표가 2025년 6월 27일, '2025 국제베스트브랜드대상 어워즈'에서 세계인플루언서 대상(International Influencer Awards, IIFA)을 수상할 예정이다. 최형준 대표는 K ART Company를 이끄는 인물로, 오랜 기간 예술과 문화 브랜드의 확산을 통해 대중과 소통해온 공로를 인정받아, 이날 ‘아트 인플루언서’ 부문에서 대상을 수상할 예정이다. 국제베스트브랜드대상, 글로벌 문화콘텐츠 리더 발굴 해당 어워즈는 재단법인 기부천사클럽과 세계인플루언서연맹, 라이프 방송, 세계럭셔리모델연맹 등이 공동 주최하며, 브랜드, 문화예술, 미디어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세계적 영향력을 행사한 인물을 선정하여 시상하고 있다. 이날 시상식에서는 세계인플루언서대상, 세계럭셔리모델 어워즈, 국제한복모델선발전, 국제참예술인대상 등 총 4개 부문이 함께 진행되었다. ️ ‘예술의 대중화, 브랜드의 품격’ 최형준 대표는 K ART Company를 통해 한류 기반의 예술콘텐츠와 브랜드를 연계하는 프로젝트를 꾸준히 진행해왔으며, 서울 청담동을 중심으로 럭셔리 아트와 퍼포먼스, 국제모델 콘테스트, 문화예술
2025년 5월 26일 저녁 9시에 JTBC 클럽하우스에 출연한 포씨유 박규빈 실장의 예고편입니다. '캐디의 모든 것에' 관해서 설명할 예정입니다. 많은 시청 부탁드립니다.
영 톰 모리스의 삶은 골프 코스 위에서는 눈부신 영광의 연속이었지만, 그라운드 밖에서는 한 젊은이의 고뇌와 비극이 깊게 드리워져 있었다. 특히 아버지 올드 톰 모리스와의 관계는 그의 삶을 관통하는 가장 중요하고도 아픈 축이었다. 두 사람은 단순히 아버지와 아들을 넘어, 당대 최고의 골프 부자이자 스승과 제자, 그리고 동료이자 라이벌이었다. 함께 디 오픈의 영광을 나눴고, 챌린지 매치에서 한 팀을 이루며 골프 역사를 써 내려갔다. 그들의 유대감은 골프계의 전설로 통했다. 그러나 이처럼 단단했던 부자 관계에 균열이 가기 시작한 것은 영 톰의 '사랑' 때문이었다. 1874년, 영 톰은 마거릿 드루리(Margaret Drinnen)라는 여성과 결혼을 발표했다. 영 톰은 마거릿을 만난 후 빠르게 깊은 사랑에 빠져들었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으로, 그들은 만남 초기에 이미 육체적인 관계를 맺을 정도로 서로에게 강하게 이끌렸다. 하지만 마거릿에게는 복잡한 과거가 있었다. 그녀는 영 톰보다 연상이었을 뿐만 아니라, 과거의 관계에서 사생아를 낳았던 전력이 있었다. 비록 그 첫 아이는 태어난 지 몇 주 만에 세상을 떠났지만, 당시의 보수적인 사회는 물론 교회에서조차 '낙인찍히고
영 톰 모리스의 진정한 위대함은 단순히 압도적인 우승 기록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그는 19세기 골프의 판도를 바꾼 '기술 혁신가'이자 '스타 플레이어'로서 현대 골프의 씨앗을 뿌린 선구자였다. 당시의 골프는 주로 신중한 플레이와 예측 가능한 샷이 주를 이루었으나, 영 톰은 이러한 보수적인 틀을 깨고 더욱 공격적이고 창의적인 플레이 스타일을 선보이며 관중들을 열광시켰다. 그의 플레이는 단순히 힘을 과시하는 것을 넘어, 정교한 기술과 대담한 전략이 결합된 예술에 가까웠다. 영 톰의 혁신적인 플레이 스타일은 그의 신체적 특징과도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었다. 그는 아버지 올드 톰 모리스보다 큰 약 173cm(5피트 8인치)의 키에 단단하면서 강인한 체격, 특히 매우 강한 손목을 지녔다. 이러한 체형은 당시로서는 드물게 강력하고 유연한 스윙 아크를 만들어낼 수 있게 했으며, 이는 그의 파워풀한 드라이브 샷의 원동력이 되었다. 그의 젊고 건장한 육체는 단순히 공을 때리는 것을 넘어, 공에 다양한 스핀을 걸고 궤적을 조절하는 섬세한 기술을 구현하는 데 최적화되어 있었다. 그가 발명하고 대중화시킨 가장 혁신적인 기술 중 하나는 바로 '백스핀(Backspin)'이었다. 당시에
아버지의 엄격하면서도 세심한 가르침, 그리고 에어 아카데미에서의 특별한 교육 환경 속에서 영 톰 모리스의 골프 재능은 놀라운 속도로 만개했다. 그의 이름이 전 세계 골프계에 각인된 것은 1868년, 바로 디 오픈 챔피언십(The Open Championship)에서였다. 당시 17세 5개월 8일의 나이로 출전한 영 톰은 이 대회에서 154타라는 경이로운 스코어를 기록하며 챌린지 벨트를 품에 안았다. 이 기록은 디 오픈 역사상, 그리고 남자 골프 메이저 대회 역사상 최연소 우승이라는 불멸의 대기록으로, 150년이 넘는 지금까지도 깨지지 않고 있다. 골프 역사에는 영 톰 모리스처럼 어린 나이에 천재성을 발휘한 선수들이 존재한다. PGA 투어 최연소 우승 기록은 18세 6개월 9일의 찰스 코치스(Charles Kocsis, 1931년 미시간 오픈)가 가지고 있으며, 현대 골프의 아이콘 타이거 우즈(Tiger Woods)도 20세 9개월 6일에 첫 PGA 투어 우승을 거머쥐었다. 메이저 대회로 범위를 넓혀보면, 영 톰 다음으로 젊은 우승자로는 존 맥더모트(John McDermott, 19세 9개월, 1911년 U.S. 오픈)가 있으며, 타이거 우즈는 21세 3개월에
영 톰 모리스, 본명 토머스 미첼 모리스 주니어, 그의 탄생은 스코틀랜드 골프 역사에 한 줄기 빛을 던지는 사건이었다. 1851년 4월 20일, 스코틀랜드 세인트앤드루스에서 태어난 그는 '골프의 아버지'라 불리는 올드 톰 모리스와 낸시 베이(Nancy Bay)의 아들이었다. 그의 출생은 올드 톰이 인생의 중대한 전환점을 맞았던 시기와 정확히 맞물린다. 1840년대 말, 올드 톰은 스코틀랜드 골프의 거장이자 자신의 스승이었던 앨런 로버트슨의 견습생으로 일했으나, 구타페르차 볼(gutta-percha ball) 사용을 둘러싼 갈등으로 로버트슨과 결별하고 1851년 프레스트윅(Prestwick)으로 이주했다. 영 톰의 탄생은 모리스 가문의 새로운 시작을 상징했으며, 이 환경 속에서 그는 골프에 둘러싸인 특별한 유년기를 보낼 수 있었다. 아버지 올드 톰 모리스는 프레스트윅으로 이주한 후, 그곳에서 그린키퍼이자 클럽 및 볼 제작자로 자리매김했다. 그는 프레스트윅 골프 클럽의 코스를 설계하고 관리했으며, 이는 1860년 디 오픈 챔피언십 창설의 기반이 되었다. 반면, 올드 톰이 캐디 출신으로서 맨땅에 헤딩하듯 골프계에 뛰어들어 자신의 입지를 다졌다면, 영 톰은 아버지의
프롤로그: 시간의 장막을 뚫고 빛나는 짧고도 강렬한 별 골프는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스포츠다. 그 긴 시간 속에서 수많은 위대한 선수들이 탄생했지만, 일부는 단순히 뛰어난 기량을 넘어선 존재로 기억된다. 스코틀랜드의 바람 부는 링크스에서 짧지만 강렬한 삶을 살다 간 영 톰 모리스(Young Tom Morris, 1851년 4월 20일 ~ 1875년 12월 25일)가 바로 그런 인물이다. 그의 본명은 토머스 미첼 모리스 주니어(Thomas Mitchell Morris Jr.)이다. '골프의 아버지'라 불리는 올드 톰 모리스(Old Tom Morris)의 아들이자 아버지의 그늘에 가려지지 않고 독자적인 빛을 발한 전설로, 그의 아버지와 비교해서 영 톰 또는 토미라고 불리어졌다. 그의 이름 앞에는 늘 '최초의 골프 슈퍼스타', '골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신동'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19세기 골프의 시대를 평정했던 그는, 단순한 우승 기록을 넘어선 혁신적인 플레이 스타일과 시대를 앞선 카리스마로 골프의 대중적 인기를 견인했다. 실제로 2009년 9월 '골프 매거진'이 발표한 역대 최고 골퍼 설문조사에서 영 톰 모리스는 14위에 오르며 19세기 선수 중
※본 기사는 본사와 제휴한 조세금융신문과 동일하게 게재한다. <지난호에 이어서> 코스를 관리하다 톰이 만든 골프 코스, 이를 아름답게 유지하기 위한 코스 관리도 톰의 몫이었다. 페어웨이와 러프 특히 그린 잔디는 상태를 고르게 유지시키고 관리하는 것이 특히 중요하다. 그래서 골프장마다 코스를 관리하는 코스관리과가 별도로 존재한다. 코스 관리에 대한 개념 자체가 없던 19세기에 코스 관리라는 분야를 만든 사람이 바로 톰이다. 그래서 톰의 또 다른 별명이 현대 그린키핑(Greenkeeping)의 아버지다. 앞에서 말했듯이 톰이 현대적 개념의 표준화된 18홀 골프 코스와 코스 길이를 창시했다. 톰은 골프 코스 디자인 분야를 개척한 사람이며, 우리가 코스에서 항상 보고 있지만, 무심히 넘겼던 것들을 만든 사람이다. 주말 골퍼가 그린에 올라가면, 제일 듣고 싶은 소리가 볼이 홀 컵에 빨려 들어갈 때 볼과 컵이 만나서 만들어내는 아주 기분 좋은 소리, ‘땡그렁’이다. OK를 받고도 이 소리가 듣고 싶어서 볼을 바로 집어 올리지 않고, 한번 더 퍼터를 들고 가 기어이 이 소리를 듣고 싶어서 퍼팅을 한다. 19세기에는 이 ‘땡그렁’ 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홀 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