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도 그랬겠지만 요즘 들어 더더욱 존경하기 어려워진 직업 가운데 하나가 바로 정치인이 아닐까 싶다. 수년 전 타계한 정의당 노회찬 의원의 경우는 살아생전 죽어라 욕을 해대던 비정상적인 언론매체들과는 대조적으로 조문객들이 줄을 서서 분향소를 찾기도 하였지만, 대체로 정치인들은 자신의 권력욕을 채우기 위해 드러난 진실이나 애도해 마땅한 일마저도 정치적으로 교묘하게 이용할 줄 아는 부류로 이해되어왔다. 저자가 미국인이고 이 책의 배경이 미국 사회인 점을 고려하면 민주주의 제도를 우리보다는 먼저 시작했던 선진국이니까 그래도 여러 면에서 조금은 낫지 않을까 싶었으나, 공공의 이익과 다수의 행복을 바라고 실천에 옮겨 국민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는 정치인이 그리 많지 않은 건 미국이나 우리나 비슷한 것 같다. 책 서두에 인용된 세르반테스의 말처럼 ‘과학은 그 자체로 거짓말을 하는 법이 없다. 거짓말을 하는 것은 과학을 빙자한 인간들이다.’ 그렇다면 우리 대중에게는 과학을 앞세운 현혹적인 언사로 국민을 섬기지 않는 정치인들을 골라 낼 줄 아는 안목이 필요하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그들의 거짓 술수와 그로 인해 저지르는 우리의 오판이 결국은 우리 자신의 목을 조이는 결과
학교 수업 시간표처럼 사람의 인생에도 순서와 절차를 따른 일정을 적용할 수 있을까? 굳이 이 책을 읽어보지 않더라도 초등학교 취학부터 고등학교 졸업까지는 누구나 비슷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쉽사리 예측할 수 있겠다. 자, 그러면 첫사랑을 만나고 대학을 졸업하고 첫 직장에 취업하고 인생 처음 자동차를 구매하고, 결혼과 출산, 첫 주택을 구매하는 시기 등 점점 수많은 변수가 더해지는 인생의 시간표를 작성해보면 어떨까? 궁금해져서 묻는 말이기는 하지만 과연 과거에 누구라도 이런 시도를 해 보기는 했을까? 사람은 본능적으로 자신의 얘기를 꺼내어 타인에게 드러내는 동시에 이에 대한 타인의 반응을 알고 싶어 한다. 나의 존재를 알리고 싶은 만큼이나 나에 대한 타인의 생각도 궁금한 것이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컴퓨터가 문명의 이기로 자리 잡으면서 직접 사람과 사람이 만나야 상당 부분 해결되던 자신을 알리고 타인을 알아내는 이 과정이 더 복잡하고 어려워진 것 같다. 직접 자신을 드러내지 않을 수 있는 인터넷상의 익명성이 이러한 직접적인 절차를 생략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고 더욱이 정보의 양도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그 진위를 판별하기부터 쉽지 않게 되었다. 이런 현상을 생각하
얼마 전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이란 용어가 심심찮게 회자되던 일을 기억들 하시리라. 사실 꼭 지적이지는 않더라도 사람 사이의 소통을 위한 대화는 필요한 것이고, 반드시 지식의 수준에까지 이르지 않아도 대화 자체는 가능하다. 그러나 허구한 날 안부 인사나 날씨 혹은 취미만 묻고 답하자면 대화의 밑천은 금방 동나게 마련. 사람 살아가는 모양새도 이와 비슷하다는 생각이다. 그냥 일하고 밥 먹고 잠자고 휴일 되면 늘어지게 늦잠자고 일어나 한 잔 걸치고 또 늦잠자고.. 이거 뭐 인생에 무슨 재미랄 게 있겠는가? 그런데 우리는 간혹 주위에 재미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목격한다. 대체로 바쁜 모습에 활력이 넘치고 즐거워 보인다. 나만 우울한 건가 저 이는 어떻게 저리 다를 수 있지? 괜한 자괴감이 몰려온다. 이 책의 저자는 빵 굽기나 페인트 칠 등 나는 잘 할 줄 모르지만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상의 소소한 기술에 집중하고 익히면 우리의 일과 삶이 송두리째 바뀐다고 말한다. 이런 기술을 익혀 볼 것을 권유받는다면 아마도 ‘대개는 시간이 없다‘는 흔한 답변을 하고 말 것 같다. 그런데 내게 정말 그런 소소한 기술이 있다면? 더구나 숙달에 필요한, 지루하도
이 책은 지금의 20대 계층이 처한 경제적 상황과 정치 사회의식 등에 미치는 영향을 다룬 분석 보고서에 저자가 불평등 세습에 관해 2017년에 작성한 글을 엮고, 기존 연구와 통계청, 고용노동부의 통계 자료 및 기관에서 만든 원시 자료를 가공 분석한 것이다. 다양한 형태, 상세한 수치의 그래프와 도표를 수록하여 독자의 이해를 돕고 있다. 모두 8개의 장으로 구성되었으며 다음과 같이 요약해 보았다. 1장. 20대가 진입하는 노동시장의 특성 부모 세대의 소득 불평등이 자녀 세대로 이어지는 핵심경로는 자녀 세대의 노동시장 진입 당시 임금격차(처음 취업했을 때의 임금소득의 차이)에 있다. 100인 이상 중소기업 취업자 초봉을 100으로 할 때 대졸 취업자 초봉은 159, 25년 장기 근속할 경우 194 대 340으로 벌어진다. 노동시장에 진입하는 청년들은 번듯한 일자리, 즉 대기업이나 공기업의 정규직, 공무원을 희망한다. 숫자만 놓고 보면 일자리의 양은 적지 않으나 번듯하고 괜찮은 일자리 창출이 적다는 것이 진짜 문제이며 이것이 기를 쓰고 명문대에 진학 하려는 이유이다. 취업 시장은 서열 높은 대학 졸업자들이 상대적으로 대규모 사업체, 상용직 및 정규직을 더 많이
이 작품의 줄거리를 아주 짧게 요약하자면, 고아인 올리버가 고아원과 구빈원(workhouse)의 구속에서 도망쳐 런던에 온 후, 범죄자들의 세계에 빠지게 되고 우여곡절과 파란만장한 사건들을 거치면서 결국은 그들의 굴레에서 벗어나 행복한 삶을 얻게 되는 과정을 기록한 작품이다. 그러나 이 작품을 지나치게 단순화시켜 권선징악으로 끝나는 동화나 촌뜨기 소년의 인생 역전 로또 맞은 이야기쯤으로 여길 수 없는 근거는 바로 작품의 탄생 배경에서부터 찾아볼 수 있다. 19세기 들어 영국은 산업혁명을 통해 사상 유례없는 번영을 누린다. 증기기관 발명을 통해 철도와 선박이 등장하고 통신 시설이 발달한다. 생활의 중심 역시 농촌에서 도시로 바뀌어 영국 사회를 지배하던 귀족은 몰락하고 도시 자본가가 세력을 얻기 시작한다. 수제품은 이제 기계로 대량 생산되고 기술이 없어도 노동력만 있으면 누구나 공장에서 일할 수 있어 가난에 찌든 빈민층은 어린아이까지 공장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었다. 사실상의 아동 노동을 허용한 악법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영국 정부는 공리주의에 근거하여 싼 임금으로 빈민을 쥐어짜고 죽을 때까지 노동력을 착취한다. 사람이 가난한 건 개인이 나태하고 무절제하기
당대 최고의 문학가 중 한명인 조식이 지은 시로 일곱 걸음을 걷는 동안 지은 시라고 해서 칠보시라고 한다.